[농정춘추] 유엔 농민권리선언 채택과 여성농민

  • 입력 2018.10.13 15:34
  • 기자명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농촌 들녘은 수확철을 앞두고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10월에 잘 오지 않던 태풍은 수확철을 앞둔 농민들의 가슴엔 한차례 멍울을 지우고 지나갔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겨울작물인 마늘을 심은 저지대 논이 침수되고 수확을 앞둔 벼들이 쓰러지고 수확을 한창 할 과수농가들은 낙과 피해를 입은 곳이 꽤 있다고 한다. 갈수록 더해가는 이상기후와 자연재해 앞에서는 농민들이 아무리 대책을 세워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대목이다.

지난 9월 말 국제농민운동 조직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는 17년이라는 긴 시간의 고된 협상 끝에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토지·종자·생물다양성·로컬시장 등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유엔 농민권리선언문을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통과시켰다. 다음달 유엔총회에서도 통과되면 이 선언문은 각 국가가 농민들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도구가 될 것이다.

특히 이 선언문에는 여성농민의 권리를 인정하고, 성별·언어·문화·결혼여부·재산·장애·나이·정치 및 여타 견해·종교·출생이나 경제·사회 또는 다른 지위로 인해 차별 받지 않을 권리도 포함돼 있다.

한국 농촌과 농업에 있어서 여성농민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동안 농촌에서 가정과 마을을 돌보고 지역을 보존하고 농업에 있어서는 씨를 뿌리고 거두는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농업의 주체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정책도 농가중심, 즉 남편중심으로 이뤄지는 구조 속에서 여성농민들은 땅 한 평, 소득 한 푼도 없이 무급종사자로 일하며 가정경제, 지역경제를 지탱해왔다.

이 속에서 여성농민들은 농업의 주체로 서기 위해 여성농민의 법적지위 보장을 위한 공동 경영주 등 정책들을 제안했고 이 바람은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정책들은 농가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가부장적인 한국 농업과 농촌의 현실에서는 여성농민들이 공동 경영주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땅을 가지고 소득이 있는 일반 농민들과는 달리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전히 한국은 국내법과 상충된다는 이유로 농민권리선언문 채택에 기권표를 던지고 있다. 다음달 유엔총회에서는 한국정부의 인식이 달라졌으면 한다.

그동안 정부정책은 규모화된 대농, 기업농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 왔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가족농을 위한 정책에서도,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화가 뿌리깊이 박혀 있는 농촌 현실상 여성농민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농민을 중심에 두는 소농중심으로 정책으로, 여성농민도 당당히 농업의 주체로 서게 해야 한다.

현재 전남 강진, 해남에서부터 시작돼 확대되고 있는 ‘농민수당’이 요즘 농민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 농민수당이 농가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여성농민들은 또다시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위한 보상으로 농민수당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여성농민들이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예산상, 구조상, 여건상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만들려고 하면 왜 못 만들겠는가?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다. 함께 농사를 짓고 농업을 지키고 농촌사회를 유지·발전 시키는 주체로서 여성농민들도 유엔의 농민권리선언처럼 농민수당에서 제외되지 않는 보편적 농업정책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