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59] 슈퍼맨

  • 입력 2018.10.13 15:32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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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9월이 되자 200여 그루의 미니사과 알프스 오토메 묘목을 식재한지 3년만에 처음으로 300kg정도 수확이 예상됐다. 이 중 벌레먹은 것과 상처가 있는 것을 골라내면 약 200kg 정도는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 적은 물량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였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온라인 판매여서 나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페친(지인)들이 구매신청을 해주었다. 오토메를 본적도 없고 맛을 본적도 없으면서도 그냥 격려차 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고마웠다.

아내와 둘이 수확하고, 선별하고 세척하고 팩에 1kg씩 담고, 다시 박스에 넣어 테이핑 했다. 농협에서 택배비를 박스당 1,000원씩 보조해 준다고 해서 51개 박스를 강현농협 경제사업부에 싣고 간 다음, 주문자의 이름과 주소와 전화번호 리스트를 담당자에게 제출했다. 직원이 이를 컴퓨터에 일일이 입력하고 박스에 붙이는 스티커를 프린트해서 길게 뽑아 줬다. 나는 이를 박스에 붙였다.

이 모든 과정이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무엇보다 세척작업은 아내와 둘이 꼬박 3일이 걸렸다. 그을음이 좀 있어서 보기에 만족스럽지 못해 세척을 해서 보내기로 했는데 막상 해보니 이 일이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 작은 과일을 하나씩 붙잡고 물로 닦는 것이니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무리가 가는 작업이었다. 내년에는 그을음이 없게 잘 키워야 될 것 같다.

암튼 수확하여 택배로 보내는 전 과정은 약 8일 정도 걸린 것 같다. 저장고도 아직 없으니 수확하여 빨리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렀다.

200여팩을 모두 배송했지만, 아직 농막 여기저기에는 판매할 수는 없는 흠 있는 오토메가 많이 있는데 더 골라서 일부는 마멀레이드 만들고, 더 많이 상한 것은 토종미생물로 발효시켜 밭에 환원할 예정이다.

이러한 전 과정을 생전 처음 체험해 보면서 느끼는 것은 농민은 생산에만 전념하게 하고,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전문가나 전문집단이 판매해 주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사실 안전하고 몸에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 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일 년간 혼신의 노력을 해야 할뿐만 아니라 하늘의 도움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어렵게 농사지어 놓은 농산물의 판매는 유통전문가나 기관이 맡아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농부는 생산전문가이지 가공이나 유통전문가가 아니지 않는가. 최근에는 생산하고 가공하고 유통하고 판매하고 관광업자까지 되라고 하니 과연 몇 명의 농민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농민은 슈퍼맨이 아니다. 특히 80%이상인 대다수의 중소농과 고령농에게 슈퍼맨이 되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년에는 생산량도 두세 배 이상 늘어날 것 같은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나는 절대 슈퍼맨이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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