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쌓았을까? - 밭담의 과거와 현재

  • 입력 2018.10.07 11:0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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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밭담은 제주 농경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사진은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밭담 풍경이다. 한승호 기자
밭담은 제주 농경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사진은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밭담 풍경이다. 한승호 기자

 

밭담에 관해 문헌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234년 제주판관 김구가 농지와 관련한 재산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경계용 밭담을 쌓도록 지시했다고 적혀 있다. 즉 고려 후기를 즈음해 밭담이 확산됐다는 사실과 더불어 당시의 쓰임새 하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최초로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용도를 위해 밭담을 쌓게 됐는지에 대해선 사료가 부족해 알 길이 없다.

다만 화산섬 제주도의 척박한 토양환경을 생각하면 아마도 밭 주변에 돌을 쌓는 행위는 설령 그로부터 기능성을 얻지 못할지언정, 불가피한 행동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농사를 짓기 위해 개간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돌들을 힘들여 멀리 운반하지 않고 자연스레 밭 주변에 쌓았을 거란 게 관련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즉 밭담의 역사는 이 섬 농경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떻게 생겨났든지 간에,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밭담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선대 농민들의 수고를 덜었다. 척박한 땅에서 휴지기를 가지며 농사를 지을 때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는 “소와 말이 함부로 들어올까 돌담으로 막았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방목으로 가축을 기르던 제주 목축업에도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표적인 기능은 제주도에 상시로 부는 바람을 막아주는 것으로, 농작물이 맞을 강한 바람을 한 차례 순화 시켜주고 또 이 섬의 건조한 토양이 쉽게 날리지 않도록 했다. 지금도 거센 바닷바람을 맞는 해안가의 농경지나 감귤 농장에 있어 밭담은 중요한 농업 시설이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주민인 부석희씨는 “해안가 바람 부는 곳은 담 없으면 흙 다 날리고, 싹 나면 바람이 다 치고 지나간다”라며 “담이 있으면 바람이 부딪혀 상승하니 아주 작은 밭담이라도 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증언했다. 그는 “농사 오래 지은 동네 분들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며 “그래서 밭에서 나오는 돌 함부로 안 치우고 밭담에 하나씩 하나씩 쌓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밭담은 제주 농업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무엇보다도 제주 특유의 경관을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제주에선 지난 2010년 초반부터 밭담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지난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14년엔 유엔 식량농업기구(UN FAO)가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다. 이러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진 앞으로 밭담들을 보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지원 정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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