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돌챙이 오경용씨의 ‘밭담만담’

  • 입력 2018.10.07 00:18
  • 수정 2018.10.07 19:23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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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돌챙이’는 거의 사라져가는 제줏말이다. 본래 석공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세월과 경륜이 묻어나는 아련한 별칭이 됐다. 동네마다 한둘씩 있는 돌챙이 중에서도 솜씨가 남다르다는 오경용씨를 만나 잠깐 밭담 이야기를 청해 봤다.
 

오경용 (제주 구좌읍 평대리)
오경용 (제주 구좌읍 평대리)

열일곱 살 때부터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돌일을 했어. 그땐 집을 짓는다 치면 목수는 방에서 점심을 먹고 돌챙이는 마당에서 먹을 만큼 천대를 받았지. 지금은 반대야. 석공이 귀하기도 하고 일이 힘들거든. 명칭도 돌챙이가 아니라 석공이라고 하잖아.

밭담 쌓을 때 툭 툭 올려놓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안돼. 돌 사이 틈에 이렇게 아귀가 맞게 쌓아야 눌러지고 안 무너지지. 담 다는(쌓는) 거 보면 잘 하는 사람인지 못 하는 사람인지 바로 알아. 하루에 열세 덩이 다면 잘 다는 사람, 그보다 더 다면 못 다는 사람이야. 또 다 끝났을 때 돌이 모자라면 잘 다는 사람, 남으면 못 다는 사람이지. 빈틈 없게 꼼꼼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야. 내가 단 담은 딸딸이(구형 트럭)로 몇 번을 박아도 안 무너지거든.

옛날 4.3때 경찰들이 성담을 쌓으래서 해안가 밭담을 다 옮겨 쌓는 바람에 이 동네에 밭담이 하나도 없어졌었어. 지금 있는 밭담들은 4.3 끝나고 주민들이 다시 가져다가 단 거야. 그땐 소, 말을 풀어 키워서 밭에 들어오지 말라고 다야 했지. 그리고 바람이 이걸 받으면 올라가버려. 보면 같은 밭에서도 담 근처랑 멀리랑 자라는 게 차이가 나잖아.

돌일이 손 찧고 관절 다치고 아주 힘든 게 말이 아니야. 그동안 미깡(귤)이랑 돼지농장 했었는데 집사람 떠나기 전 병수발 하느라 팔고 돌일을 다시 시작한거야. 언제까지 할거냐고? 이젠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니 언제까지 한다고 말을 못해. 나 아니면 아무도 못하니까 하는거고, 돌 쌓는 게 아직은 재미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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