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삶과 죽음

  • 입력 2018.10.06 15:16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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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따르릉 따르릉… 아침 일찍 걸려온 전화 한 통.

“엄마! 이번달 용돈 언제 줄꺼야? 핸폰 회사에서도 문자왔어.”

“알았다.”

아이들에게서 오는 전화의 90%는 돈 달라는 전화다. 식탁 위엔 밀린 우편물이 가득하다. 종류도 다양하다. 한숨 쉬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 무엇을 심어야 괜찮아질까 스마트폰을 열어 이리저리 검색해본다.

남편에게 “며칠이라도 노가다 뛰면 어때? 그래도 여자보다 남자 일당이 훨씬 많잖아.”

“…이번엔 괜찮을 거야.”

평생 농사꾼 남편 말수가 적어졌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씨앗을 뿌리며 모종을 심으며 늘 했던 말이다.

“이번엔 괜찮을 거야.”

그렇게 묵묵히 농사만 지었다. 매실은 때 아닌 우박으로 헛농사가 되었다. 재해보험을 들며 특약으로 서리와 우박 둘 다 들까 하다 ‘우박은 없겠지?’ 좀 아껴보려 했는데 때 아닌 우박이 오뉴월에 쏟아지는 걸 목도하게 되었다. 다음주엔 올 마지막 초대형 태풍이 제주를 향해 올라온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고기를 먹은 게 언제일까? 남편 좋아하는 갈치조림은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마을방송이 나온다.

“우리 마을 독감 예방접종날은 이번주 목요일입니다. 보건소에 오전에 가시면 됩니다.”

잊으면 안된다. 아프면 안된다. 목요일 목요일 목요일 계속 되뇌인다. 그러다 문득 목요일이 뭐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꾸 까먹는다. 건망증이다. 아직 치매는 아니야 나를 위로한다.

호미를 들다 낫을 들다 여기저기 일투성이다. 김장배추 얼마나 컸나 들여다보다 눌러앉아 벌레를 잡는다. 포기마다 시커멓게 자리 잡은 벌레에게 괜한 화풀이를 한다. 니가 죽든가 내가 죽든가 한번 해보자. 오후 내 죽치고 앉아 기싸움 한다.

따르릉따르릉… 전화가 온다. 틀니 본뜨러간 어머니의 전화다. 오늘은 치과다. 이제 끝났다. 데리러 오란다.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단다. 이가 다 상했으니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단다.

“벌레는 다 잡았냐? 약치면 될껀데 뭐한다고 고생을 사서하냐? 그래봤자 때깔도 없어 사람들이 사가지도 않아.”

“….”

나는 할 말이 없다. 어머니의 말씀은 끝이 없다.

쌀값이 금값이란다. 식탁물가가 비상이란다. 농민여러분 쌀값이 금값이 되었답니다. 오이, 고추, 호박이 금값이 되었답니다. ‘에헤라디여’ 모처럼 춤추고 노래 한번 불러보게요.

금값이 되었으니 밀린 고지서 이번 참에 다 해결해 버립시다. 오랜만에 장에 한번 가봅시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금값은 한해 농사 물거품 농사를 보여주는 것임을 아는 이가 있을까?

해가 진다. 별나게 빨간 해가 진다. 요 며칠 계속 그런다. 가을이 온 거다. 오곡백과 풍성한 가을이 온 거다. 나도 수확하고 싶다. 모종 만들어 심은 콩은 다 말라 죽었다. 행여나 뿌렸던 들깨는 끝내 싹이 나지 않았다. 다시 호미 들고 시금치 씨앗을 뿌린다.

“그래 이번에는 괜찮을 거야.”

다 썩어 문드러진 희망의 끈을 아직도 부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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