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성과 미소

  • 입력 2018.10.06 20:20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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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교수

최근 쌍용자동차 사태의 해고자 문제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재와 함께 전원 복직이라는 형태로 한 매듭을 지었다.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이미 충분히 아는 내용이기에 생략하지만, 해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 속에 많은 농성과 안타까운 호소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현 정부 들어서서 종료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지금 현재 청와대 앞에는 또 다른 단식 농성이 있다. ‘농업·밥상 살리는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단’이라는 붉은 글씨가 적힌 노란 현수막 앞에 순박한 얼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촛불 시민들이 기대했듯이 조금씩 사회는 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또 우리가 오랜 적폐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해도 그런 적폐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한 마음임도 분명하다.

하지만 많은 농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비록 사회 곳곳에서 숨 쉬고 있는 적폐 청산을 서두를 수도 없고, 그리 쉽게 되지 않는다 해도 권력 남용에 대한 평범한 이들의 반란으로 이뤄낸 현 촛불 대통령이 제시했던 공약들이다. 현 정부가 지난 정부들의 무관심 속에 더욱 사회약자가 된 노동자와 농민이 바라는 개선에 적극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안타까움으로 변해 청와대 앞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사회에서 농민들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대우로부터 소외된 것은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고, 시대 변화 역시 농축산업 위주로 갈 수 없음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건강하고 소위 ‘농민이 대접받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면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에서 보듯이 대통령 직속 기관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해결에 나서지 않는 한 결코 현실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국가 차원의 장기적 시각보다는 임기응변의 미봉책으로 일관해 온 정부 정책 속에 지속적으로 사회 변방으로 밀려나 소외되어 온 농촌 현장엔 많은 적폐가 중층 구조로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층 구조의 적폐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정책적 배려와 더불어 여러 이해당사자들 간의 조율과 변화가 필요하다. 또 이를 이끌어 낼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약 중의 하나인 대통령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설립 법안이 여전히 국회 어디선가 부유하며 떠돌고 있는 현실은 농민들을 실망시킨다.

쌍용자동차 분규 상황에서 보듯이 사태 해결을 위해서 서로 대화하고 풀어야 할 대상과 문제점이 분명한 노사 갈등 구도 속에서마저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움직임으로써 사태가 마무리된 것을 상기할 때, 무관심과 냉대 속에 여전히 국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설립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 대통령의 높은 지지의 한 축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분명한 의지 표명과 실행이다. 그 의지는 취임하자마자 대통령 직속으로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설립한 것으로 잘 나타났다. 농업분야에 있어서도 대통령은 공약 실천과 함께 그런 의지를 보임으로써 긴 시간 동안 고통 받아 온 농민들이 조금은 대접받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청와대 앞에서 굶어가며 농성하는 농민들을 그들이 있어야 할 제 자리로 내쫓을 수 있는 것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포용하며 보듬는 대통령의 따뜻한 미소와 강력한 실천의지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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