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58] 농부의 마음

  • 입력 2018.09.21 20:18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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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오면 가끔 과일을 선물로 받는다. 놀라운 것은 하나같이 크고 잘생기고 때깔 좋고 매끈하고 달다. 사과, 배, 복숭아, 포도, 감귤류 등 대부분 선물용 과일이 그렇다.

선물용만 그런 건 아니다.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과일 대부분이 그렇다. 일반 소비자들은 이런 과일을 선호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이런 과일을 생산해내려 애를 쓰게 된다.

문제는 이런 과일을 생산하는 과정에 대해서 소비자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생산과정에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얼마나 사용하는지, 때깔과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 어떤 물질을 사용했는지, 생산과정이 자연과 환경 생태 보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인체에는 또 얼마나 안전한지, 무엇보다 생산자 농민의 농업을 대하는 자세나 철학 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과정보다는 결과물 즉 최종생산물만을 보고 좋고 나쁨을 평가하려한다. 보기에 좋고 매끈하며 당도가 높기만 하면 좋은 과일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의 미니사과 알프스오토메는 작고, 잘 못생겼지만 내게는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하다.
나의 미니사과 알프스오토메는 작고
잘 못생겼지만 내게는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하다.

나도 3년간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여 드디어 처음으로 9월말경 조금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 수확하려는 나의 미니사과 알프스오토메는 작고, 잘 못생겼고, 때깔은 그저 그렇고, 매끈하지도 않다. 물론 오토메 특유의 모양과 때깔이 있음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이들 선물용 과일들과는 거리가 멀다.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친환경유기농업으로 미니사과를 생산하기 위하여 4년 전에 과수원을 새로 조성하고 3년 전에 200여 그루의 어린묘목을 심었다. 매년 풀과 호밀은 베어 밭에 깔아줬다. 벌레와 균은 유기농자재만을 엄선하여 방제했다. 석회보르도액, 백두옹·돼지감자·은행나무잎 등의 삶은물, 생선액비, 클로렐라, 바닷물 등이 동원되었다. 그렇다고 균과 충이 모두 방제되는 것은 아니다.

자식 키울 때 이만큼만 신경썼다면 아마 나는 이 세상 최고의 부모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애정과 힘을 쏟았다. 이제 금년 3년차에 처음으로 한 그루에 1~2킬로그램(30~50개) 정도 수확을 기대하고 있다.

적은 물량이고 잘 못생겼지만 그래도 내게는 이 세상 어떤 것 보다 귀하다. 맛도 아주 좋다.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했고 환경과 생태보전에도 조금은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농부의 마음은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이를 알아주는 소비자가 있을 터이니 그들에게 첫 수확물을 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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