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농정개혁 공약 이행하라

농업·밥상 살리는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장 방문기

  • 입력 2018.09.20 21:40
  • 수정 2018.09.20 21:4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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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7일 청와대 앞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장에서 농성단이 윤소하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지지방문자들과 담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17일 청와대 앞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장에서 농성단이 윤소하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지지방문자들과 담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19일 청와대 앞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장에서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오른쪽)이 단식농성단과 대화하고 있다. 이 장관은 “대통령께 여러분의 요구사항을 반드시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9일 청와대 앞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장에서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오른쪽)이 단식농성단과 대화하고 있다. 이 장관은 “대통령께 여러분의 요구사항을 반드시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농업·밥상 살리는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단(단장 진헌극, 농성단)의 농성장은 청와대 들어가는 입구, 엄밀히는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근처에 있었다. 영추문의 영추(迎秋)는 가을을 환영하다란 뜻이다. 청와대 진입로 주변에 걸린 9월 남북정상회담 환영 플래카드도 한반도에 찾아온 평화의 가을을 환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아직 환영할 가을은 오지 않았다. 그 사실을 농성단 사람들은 온몸으로 입증하고 있었다. 기자가 방문했던 17일은 단식농성 8일차 되는 날이었다. 농성장엔 지지방문자들이 놓고 간 물과 효소들이 가득했다. 농성장 바로 옆엔 법외노조 무효화를 위해 여전히 농성 중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람들이 있었다. 그 근방에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과거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직된 136명을 복직시키란 내용으로 농성하고 있었다. 청와대 앞길은 이처럼 농성장들로 가득 찼다. '촛불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청와대 주변 풍경은 박근혜 치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4명(유영훈 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 채성석 전 친농연 정책위원장, 진헌극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공동대표, 김영규 GMO반대전국행동 조직위원장)이 단식 중이다. 말할 것도 없이 4명은 극도로 쇠약한 상태였다. 올해 66세의 유 전 이사장은 “8일차가 되니 확실히 몸에 한기가 들고 힘도 없긴 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또한 “1주일 동안은 멀쩡했는데, 어제부터 몸에 기운이 없다는 느낌이 들더니 또 하루가 지나니 더 힘든 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럼에도 4명은 쉴 틈이 없었다. 농성장엔 지지방문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기자가 방문했던 날에도 윤소하 정의당 의원, 김영재 친농연 회장, 생활협동조합 대표자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 최재관 청와대 농업비서관 등이 방문했다. 누군가가 올 때마다 농성단은 일일이 자신들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들어진다. 배에 힘이 안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4명은 끊임없이 뭔가 말을 했다. 그것도 간곡한 호소와 설득 위주의 말들이었다. 이런 종류의 말들은 일반적인 말보다 훨씬 정신적 집중력과 체력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간곡한 호소와 설득’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농민들이 수도 없이 외쳐왔던 주장이다. 그저 농업분야에 대해 대통령이 내걸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적폐농정 청산과 관료 쇄신, 대통령 직속 농정개혁 특별위원회 설치, 국민 먹거리와 식량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적 조치.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하겠다고 한 일들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 일들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GMO표시제를 개선하겠다고 했던 약속마저 답보 상태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대통령에게 22만명이 넘는 시민들은 GMO 완전표시제 국민청원에 참여하며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대통령이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 아니, 그에 앞서 대통령이 약속했던 ‘농정개혁’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 전달이라도 먼저 하라는 것, 그리고 농업계와 대통령 간의 면담 실현 등이 농성단의 입장이었다.

농성단은 ‘촛불정부’라는 지금 정부에서마저 홀대받는 농업현실을 공통으로 지적했다. ‘농업 홀대’는 대통령의 이번 방북에서부터 드러났다. 방북단엔 농업계 인사가 단 한 명도 들어가지 않았다. 농성단은 지지방문자들이 올 때마다 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실망감을 표했다. 유영훈 전 이사장은 “통일을 이야기할 때 농업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민족동질성의 측면에서도 농업교류는 매우 중요하건만, 최소한 방북단에 농업계 인사 하나 꾸리지 않았다는 건 농업에 대한 철학이 없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19일엔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방문했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1시간 동안 간담회가 진행됐다. 농성단은 이 장관에게 다시금 문 대통령의 농정개혁 입장 표명 및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이 장관은 “대통령께 여러분의 요구사항을 반드시 전달하겠으며, 반드시 면담 및 농정개혁 관련 입장 표명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농성단에겐 제발 단식을 중단해달라고 호소했다.

내외의 어려운 상황에도 농성단은 희망을 갖고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농성단을 지지·응원·동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8일에 방문한 생협 대표자들(강은경 행복중심생협 대표, 곽금순 한살림연합 대표, 김혜정 두레생협 대표)은 적극적으로 농성단 결합 및 실무지원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후원금은 20일 현재 1,200만원을 돌파했다. 스무 살 청년이 “돕고 싶다”며 농성장에서 일손을 도왔다.

어느 방문자는 “먹을 것이라도 간절히 나누고 싶은데 단식을 하고 있으니 도저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했다. 시민들의 뜨거운 마음을 보여주는 일화는 이곳에 다 싣기 힘들 정도이다. 함께 투쟁하는 ‘이웃’인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도 간간히 지나가면서 응원의 뜻을 표했다.

20일엔 농민의길, 국민행복농정연대, 농업적폐청산과 농정대개혁 국민행동,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6월민주포럼이 농성단과 함께 ‘국민의 먹거리 보장, 농업·농촌 적폐청산과 대개혁’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처럼 농정적폐 청산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농성단은 청와대 앞에 있다. 이 땅의 농민들에게 아직 ‘환영할 가을’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성단은 하루하루 쇠약해지는 가운데서도, 늘어가는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묵묵히 버티고 있다. 대통령은 이제 그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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