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 위한 정부와 국회는 없는가

  • 입력 2018.09.15 21:58
  • 기자명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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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헌중 (재)지역재단 상임이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가 올해 재개봉해 화제가 됐다. 잔혹함과 폭력적인 현대사회를 그린 영화 속에서 노인들은 그저 힘없고 쓸데없는 존재다. 제목에서 노인은 ‘오래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로 유추된다. 노인들이 무한경쟁 세상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데 대해, 그리고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대접받겠지만 그렇지 못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고발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오래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는 누군가. 농민이 그 중 하나다. 아니 농민이야말로 이 땅을 지키고 가꾸어온 오래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이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농민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고, 농촌이 행복해야 나라가 행복하며, 농민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해왔으며 농정 적폐청산과 농정 패러다임의 근본 전환을 현 정부에 기대하고 계속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스마트팜밸리니 PLS(농약허용물질목록제도)니 태양광농사니 하며 농민을 외면한 채 기업·자본 위주의 정책에 내년 농업예산 실질삭감, 국내산 계약재배·수매비축 축소 등 농민 푸대접 농정 밖에 없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명박근혜 10년 동안 우리 농정은 무관심·무책임·무대책의 3무 농정’이라며 ‘농민이 대접받는 나라’를 약속했다. 그러나 공염불이 되고 있는 데 대해 질타를 받고 있다. 진정 ‘농민을 위한 정부’는 없는가.

국회는 더 가관이다. 지난 6일 농해수위에서 위원장과 여야 간사들은 시급한 법안소위를 11월로 미루기로 했다고 한다. 9월 10일 현재 농해수위에 계류된 농림축산식품 관련 법안은 무려 437개나 된다. 그 중 시급한 농정개혁 관련 법안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대통령이 농정을 직접 챙기겠다며 공약한 대통령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설립 법안은 시각을 다툰다. 그러나 농해수위는 무슨 배짱인지 다른 상임위 법안소위들이 가동 중인데도 11월에 열겠다고 한다. 연다고 모두 통과시킨다는 보장도 없고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되는 법안들이 수두룩하다. 푸대접 정부는 무대접 국회라? 진정 ‘농민을 위한 국회’는 없는가.

지난 10일 ‘한국 농업·농촌·먹거리의 위기, 빈사상태를 걱정하는 시민농성단’의 청와대 진입로 1차 무기한 단식농성이 시작됐다. 시민농성단은, ‘국민이 촛불로 힘을 모아줬지만 근본을 개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부, 수십 년 이어온 적폐를 유지·확대하려는 관료, 그 뒤에 숨어 있는 기업과 자본을 내버려둘 수 없다’며 대통령의 먹거리·농업 진영과의 면담, 적폐농정 즉각 중단과 구태의연한 관료들 쇄신, 대통령의 농정 직접 챙기기, 현장 소통과 즉각 개혁 착수, 적폐청산·개혁추진을 위한 대통령직속 농특위의 즉각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마침내 농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농민의길 주최 ‘백남기 정신계승, 문재인정부 농정규탄 전국농민대회’는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향후 농정 진로를 다잡는데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농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 농민무시 무능농정’을 규탄하며, 쌀 목표가격 24만원과 밥쌀용 쌀 수입 중단, 대북제재 철회 및 남북 쌀 교류 실시, 농업판 4대강사업 스마트팜밸리사업 전면 폐기, 농업예산 삭감계획 철회 등을 요구하며 문재인정부의 반농민적 농정의 혁신과 농민을 위한 농정의 즉각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농민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대통령은 ‘농민이 대접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본인이 그렇게 직접 챙기겠다고 호언한 약속을 즉시 지켜야 한다. 일에는 때가 있다.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농민과 시민의 요구에 즉각 응해야 한다. 이 땅을 지키며 가꾸어온 ‘오래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 농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그의 기본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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