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화 돌리기

  • 입력 2018.09.15 21:54
  • 수정 2018.09.16 11:50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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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지자체가 가축사육에 관한 조례의 개정안에 축사의 개축^증축 등을 허용하는 항목을 삭제하겠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해당지역에서는 다른 시^군의 축산농가로부터 “제발 그것만은 막아 달라”는 부탁전화를 수없이 받았을 만큼 축산농가들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또 해당 개정안을 연내에 입법하겠다는 의지가 높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만큼 조례 개정이 현실이 된다면 현재 진행 중인 미허가축사 적법화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지 궁금해 해당 지자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내용이 축사 적법화에도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묻기 위해서는 조례 개정안 중 어떤 내용에 대한 질문인지를 설명해야했다.

“이번 조례 개정안에서요”라고 말머리만 꺼냈을 뿐인데 “그건 제 담당이 아닌데요, 담당자 연결해드리겠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끈질기게 담당자의 수화기를 붙잡아 원하는 답변은 얻을 수 있었다.

전화 돌리기의 핵심은 책임 회피다. 문제는 책임 회피의 형태가 전화 돌리기 한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가축사육에 관한 조례가 개정되는 지역에서는 군민들이 군수를 만날 수 없거나 군수로부터 ‘부군수가 맡은 일이라 나는 보고도 받지 못했고 내용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듣기 일쑤라며 “저 사람을 내 손으로 뽑았나”하는 한탄도 나온다.

이뿐일까. 정부는 무허가라, 축산농가는 미허가라 칭하는 축사 적법화 문제 역시 공교롭게도 3개 관계부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아주 적합한 구조였다. 농식품부가 “환경부와 협의가 안 돼서”, “국토부가 반대를 해서”라는 말을 달고 있었던 덕분에 축산단체는 적법화를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환경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 3개 부처를 떠돌아야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농촌에서는 주민들이 날선 대립을 해야만 했다. 축사 때문에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빗발치자 지자체는 조례 개정안을 내 향후 축사를 새로 지을 수 없게 하는 것은 물론 기존에 있던 축사마저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했다. 여기에 축산단체에서 반발을 하면 간담회를 열어주고는 알아서 대안을 찾아보라 했고, 그렇게 열린 간담회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양측의 갈등의 골만 깊게 한 채 마무리됐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 회피는 인구가 적어 소멸 위기라는 농촌 마을까지 분열시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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