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주산② 그 많던 상고(商高)는 다 어디 갔을까

  • 입력 2018.09.16 14:55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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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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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01년, 우리나라 주산교육의 변천과정을 증언해 줄 사람을 추천받기 위해서,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상업고등학교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가 우선 달라진 학교 이름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업고등학교 대부분이 어느 사이에 정보고등학교, 혹은 무슨 정보산업고등학교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단 것이다.

학교 이름에서 ‘상업’이 빠지고 그 자리를 ‘정보’가 차지한 것은 단순한 교명 변경이 아니라 주산·부기·타자로 상징되던 예전의 상업학교 교육이, 컴퓨터 중심의 정보화교육으로 탈바꿈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2001년만 해도 벌써 17년 전이다. 그 동안에 또 변화가 있었다. 가령 명문 상고로서 성가를 드높였던 덕수상고는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아예 인문계인 덕수고등학교가 되었다, 선린상고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로 변했다. ‘서울여상’이 아직도 상고의 교명을 지키고 있는 점은 오히려 이채롭다.

내가 2001년 초에 취재차 만난 사람은 서울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현 성동글로벌경영고등학교)의 홍진기 교장과 이효성 교사였다.

홍 교장은 1950년대에 상업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을 졸업한 뒤 교직에 발을 들인 이후 줄곧 상업학교에서 근무해왔으므로, 우리나라 주산 교육의 변천과정을 한 달음에 꿰고 있는 사람이다. 같은 학교의 실과부장인 이효성 교사는 그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대표하여 주산경연대회에 출전한 바 있는 이른바 선수 출신이다. 이 두 사람의 증언을 통해 주산이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가르쳐지고, 일반사회에서 어떻게 쓰여 왔으며, 또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홍진기 교장은 마주 앉자마자 우리나라 주산교육의 내력을 줄줄이 풀어낸다.

“주판은 본래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졌다가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다가,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주산보급회’라는 것을 조직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광복과 더불어 상업학교에서 주산교육을 의무화했고, 1960년대에 비로소 주산의 급수를 정해서 문교부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검정을 실시함으로써 몇 급이니 몇 단이니 하는 말이 생겨났던 것인데….”

그러면 홍진기 교사가 상업과목 교사로 근무했던 1960년대 어느 해의 신입생 수업현장으로 가보자.

“자, 다들 주판 가져왔지?”

“예. 그런데 선생님 질문 있어요. 우리 아버지는 수판이라고 하던데 선생님은 왜 주판이라고 하세요? 어느 게 맞아요?”

“수판도 맞고 주판도 맞다. 숫자를 계산하는 물건이니까 수판이고, 이걸 가지고 셈하는 것을 수판셈이라고도 했거든.”

“그럼 주판은 뭐예요?”

“주판의 ‘주’는 ‘구슬 주(珠)’자다, 여기 봐라. 가느다란 막대에 나무구슬이 줄줄이 꿰어져 있지? 그래서 주판이라고 하고, 이 주판으로 하는 계산을 주산이라고 하는 거야. 알겠지?”

그러니까 ‘주판 놓는다(주판에다 수를 놓는 것이므로)’는 맞는 말이지만, 주산(珠算)의 경우 엄밀하게는 놓는 게 아니라 ‘한다’라고 해야 적어도 어법상으로는 옳다.

그런데 주산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대목이 있다. 가름대 아래쪽의 구슬이 다섯 개인 주판이 있고 혹은 네 개만 있는 주판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3단 실력을 자랑했던 이효성 교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주판알이 다섯인 것을 ‘오주(五珠) 주판’이라고 하는데 이 오주주판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사용돼 왔지요.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 구슬이 네 개로 변한 것은, 실제로 셈을 할 때에는 맨 아래쪽 주판알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죠. 가령 ‘9+1’이라는 덧셈을 할 경우, 맨 밑에 있는 알을 마저 채워 올리는 게 아니라 곧바로 십 자리로 올라가 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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