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로 대란’ … 소비자는 인상·유통은 울상·농가는 죽상

자연재해 중첩 ‘역대급’
생산 감소에 품위 저하

  • 입력 2018.09.14 14:2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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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11일 장수군조합공동사업법인 APC에서 사과를 선별·포장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가득 차있어야 할 작업라인은 눈에 띄게 한산하고, 작업하는 손길 역시 비교적 여유롭다.
지난 11일 장수군조합공동사업법인 APC에서 사과를 선별·포장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가득 차있어야 할 작업라인은 눈에 띄게 한산하고, 작업하는 손길 역시 비교적 여유롭다.

농산물시장의 최대 대목인 명절 특수기간이 돌아왔지만 형편없는 작황 탓에 농민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특히 각종 재해의 영향을 정통으로 맞은 사과는 생산, 유통, 소비 모두가 전에 없이 힘든 상황에 놓였다.

과수농가들은 올해를 ‘역대급’으로 재해가 겹친 해라고 말한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냉해로 인해 착과율 자체가 크게 떨어진데다 한여름 기록적인 폭염·가뭄에 일소·고사 피해를 입었고, 곧이어 태풍과 갑작스런 폭우로 낙과·열과 피해까지 입었다.

사과는 과수 중에서도 작황이 가장 심하게 망가진 품목이다. 특히 추석 주력품종인 홍로사과의 피해가 두드러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창길)은 추석 성수기(추석 전 2주) 사과 출하량이 전년대비 14%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장의 체감은 그 이상이다.

전국 최대 홍로 주산지인 전북 장수의 사과 생산·유통업자들은 생산량이 예년대비 30% 이상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정품과로 따지면 50% 감소로 봐도 무방하다. 실제 이 지역 APC 반입량은 현재까지 평년의 절반 수준을 겨우 넘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품위 저하다. 색택과 크기가 중요한 홍로인 만큼 품위 저하는 무엇보다 뼈아프다. 권평우 장수군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이사는 “명절 선물용으로 쓰는 13과내(박스당 13과 이하 들이 크기)·16과내 사과 비중이 예년엔 30~40% 정도였는데 올해는 각각 1%·15%에 불과하다. 다른 상품성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크기만 따졌을 때 이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납품업체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도저히 맞출 수 없어 샘플물량 외엔 거의 납품을 못 하고 있다. 업체들과 납품 기준을 조절하려 계속 접촉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고 호소했다.

홍로뿐 아니라 부사 작황도 썩 좋지 않다. 장수 사과농가 김경훈씨가 폭우로 인해 갈라진 부사를 따 보이고 있다.
홍로뿐 아니라 부사 작황도 썩 좋지 않다. 장수 사과농가 김경훈씨가 폭우로 인해 갈라진 부사를 따 보이고 있다.

생산량 감소와 품위 저하는 고스란히 도매가격 양극화로 나타난다. 최근 가락시장 홍로 5kg 경락가는 최고 7만원대에서 최저 4,000원까지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도매가격이 7만원이라면 유통마진과 로스율을 감안할 때 소매가격은 기본 10만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아무리 적정 가격에 발주를 요청해도 물건이 없는 이상 도저히 가격을 맞추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문제는 언급했다시피 상품보다 하품 비중이 월등히 많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때깔 좋은 사과를 구경하기 힘들 뿐이지만 농민들은 소득이 줄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장수의 사과농가 김경훈씨는 “3,000평 농사에 2,000만원을 투입한다 치면 매출이 6,000만원은 나와야 4인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이 지역 사과농가의 70%가 농비를 제대로 건지기 힘들고 20% 정도는 매출 2,000만원조차 못 내 적자를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차례에 걸쳐 재해가 겹쳤음에도 정부 대책은 전무하며 개인단위 보험도 보장 범위가 낙과·냉해(특약) 등 일부 피해에 국한돼 있다. 그나마도 보험료 부담이 여전히 큰 탓에 가입률이 50%도 안되는 실정이다. 김씨는 “군에서 냉해와 태풍 피해에 대해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경험상 농가당 농약 한 박스 정도로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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