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발 나를 말려주십시오

 김영규 국민의 먹거리, 농정적폐 청산과 대개혁을 염원하는 시민농성단

  • 입력 2018.09.09 11:23
  • 수정 2018.09.09 11:24
  • 기자명 김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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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한 없는 단식농성에 들어가려 하는, 한때는 농민단체의 실무자로 일했던 농촌에 사는 시민이다. 농촌에서의 시간은 겨우 16년 남짓밖에 되지 않지만, 농민들과 부대끼며 통렬하게 느낀 것은 ‘붕괴’였고 ‘절망’이었다.

이기적인 소망을 넘어서면, 우리는 ‘지속가능’이란 단어와 마주치게 된다. 나와 가족의 행복을 넘어 사회전체의 행복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난 십여 년간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가지고 산 주제는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이었고, 농민과 국민이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노동자는 자동으로 재생산이 되지만) 한 사회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의 존재는 자동으로 재생산되지 않는다. 국가적 관심과 고도의 노력,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하는 올바른 정책과 막대한 투자가 동반되어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마치 망가진 환경으로 인해 벌들이 사라지듯 농민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국가는 무관심 일변도에 속수무책이다.

시간이 많으니 더 기다려도 된다고 나를 설득해 달라. 2017년 현재 60세 이상의 고령농가 비율이 55.3%이고, 농사짓는 경영주 평균 연령이 65세를 넘었지만, 또 40세 미만 농가가 1만호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얼마든 시간이 있다고 나를 설득해 달라.

대통령이 우리 농업의 근본부터 개혁하겠다고 공약하고 당선되었지만, 16개월이 지나는 동안 공식적으로 농업과 농민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발언 한번 하지 않았어도, 정부가 알아서 우리 농업을 희망으로, 우리 농민을 잘살게 할 것이라고 믿게 해 달라. 누가 봐도 기업과 자본을 위한 스마트팜 사업에 몇 조원을 쏟아 붓지만, 그 결과가 산업으로서의 농업만 남는 게 아니라 전체 농업을 회생시키고, 농민을 육성하는 정책이라고 나를 이해시켜 달라.

입만 열면 적폐청산과 개혁을 얘기하면서 농식품부 장관을 두 번 내리 현장과 거리 먼 분을 앉혔어도, 지방선거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임기를 스스로 제한하시는 분들이지만, 그분들이 각각 1년 내외의 시간 안에 슈퍼맨처럼 적폐를 뿌리 뽑고 천지개벽의 개혁을 하실 것이라 믿게 해 달라.

설령 이른바 ‘촛불정부’가 개혁을 못하더라도, 이 정부 보다 훨씬 개혁가능성이 높은 정부가 다음 선거에서 들어설 것이니 몇 년 만 참아보라고 얘기해줄 수 있겠는가. 지금 못해도 남은 시간이 더 있다고, 우리 농민들의 맷집이 대단하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제발 나를 나무래 달라.

공약한 것을 지키라며 GMO 완전표시제와 학교급식에서의 우선퇴출 등을 내용으로 올봄 20여만 명의 국민이 함께한 청와대 청원이 대표 식품마피아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고전적인 앵무새응답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저 관료들이 알아서 국민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질 것이라고 얘기해 달라.

지난 몇 달간 많은 선배, 농민들을 만나면서 묻고 또 물었지만, 내 물음에 다른 답을 주신 분은 없었다. 내버려두고 기다려도 세상이 좋게 바뀔 거라는 기대가 내게는 더 이상 남지 않았다. 청와대 주변 여러 농성장에 나붙은 현수막의 공통적인 내용이 ‘공약을 이행하라’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어 보시라.

아울러 나는 농민들이 내어준 월급으로 삶을 영위해왔던 사람으로서, 지난 십여 년 사이 농업현장을 더 어렵게 만든데 일조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한다. 그 책임을 지기 위해, 농민들께 다소라도 보답하고자, 뜻을 함께 하는 분들과 청와대 앞에 자리를 깔고 농정적폐 청산과 개혁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려 한다.

나를 말릴 수 없다면,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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