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대책이 애꿎은 소농만 잡는다
비현실적 대책이 애꿎은 소농만 잡는다
  • 홍기원 기자
  • 승인 2018.09.09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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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직거래 현장 놓친 식용란선별포장업 문제점 속속 드러나
안전성 대책으로 정작 살충제 없는 농장이 사라질 모순 처해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내년 4월 식용란선별포장업 시행을 7개월 남짓 남겨둔 가운데 제도의 맹점이 지역현장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류영진, 식약처)가 주무부처로서 제도의 비현실성을 인정하고 책임 있는 입장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경남지역은 최근 산란계소농들이 모여 식용란선별포장업 신설 시행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경남도청을 찾아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며 5일엔 합천군 축산과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지역에선 산란계소농 전용 GP(달걀유통센터)를 만드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어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소농전용 GP는 사업성도 불투명한데다 ‘어제 낳은 달걀을 오늘 공급하는’ 직거래의 장점조차 퇴색될 여지가 있다.

경남 합천군에서 유정란 농장을 운영하는 원범식씨는 졸지에 7년 동안 공들인 직거래 판로를 잃어야 할 상황이다. 합천유정란협회장인 원씨는 산란계 3,000여수를 평사사육하며 진주 등 인근지역 100여 가구에 직접 달걀을 배달하거나 택배배송, 생협 공급으로 판로를 유지해왔다.

원 회장은 “세척기에서 세척은 하지만 별도의 검란기는 없다. 눈과 손으로 직접 검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달걀을)깨버린다”라며 “우리 달걀은 직거래로 공급받는 소비자 가정에서 검증한다. 그러나 행정은 검란기와 데이터만 요구한다”며 답답해했다.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을 받거나 유기식품 등의 인증을 받은 농가는 수집판매업 안전관리인증(HACCP)을 받으면 소비자와 직거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직거래는 인증 획득보다 생산자와 소비자간 신뢰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원 회장은 “선별포장업 신설이 달걀에서 살충제가 검출되며 나온 대책인데 실제 달걀 안전성과는 별 관계가 없다”라며 “정작 농약과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소농만 이번 대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남지역에서 1만수 이하 산란계소농은 약 70여 농가로 이들 대다수는 소비자 직거래가 판로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남지역은 현재까진 공용선별포장업장도 없어 내년 4월 선별포장업 시행이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합천에서 산란계 3,500수를 사육하는 박명진씨는 “유정란을 생산해 100여가구에 택배로 유통하고 있는데 살충제나 항생제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선별포장업이 신설되면 막대한 비용을 쏟아 기기를 들여야 직거래를 할 수 있다니 이해가 안 된다. 살충제, 항생제 사용 여부를 관계기관들이 돌아가며 수차례나 검사 하던데 아무 의미 없는 검사였냐”며 탄식하기도 했다.

한편, 동물복지인증 혹은 유기식품인증을 받아도 유통단계에 해당하는 HACCP을 획득해야 직거래가 가능한 점도 개선사항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동물복지유정란협회 관계자는 “농식품부에서 소농이 농장 HACCP만 받고 일정 교육을 받으면 직거래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인 걸로 안다”며 “식약처 등 관계부처와 논의해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리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식약처가 달걀 직거래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선별포장업 시행을 서두르며 문제점만 노출되는 형편이다.

장상훈 산청유정란협회장은 △산란계소농 현황 파악 △산란계소농에 대한 선별포장업 예외 △친환경 산란계 소농 지원정책 수립 등을 촉구하며 “정부가 소농들이 붕괴되는 농촌사회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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