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늘 들어도 아픈 말 ‘하늘이 하는 일을 어쩌겠어….’

이원영 농업법인 도담 대표

  • 입력 2018.09.09 01:40
  • 기자명 이원영 농업법인 도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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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농업법인 도담 대표
이원영 농업법인 도담 대표

얼마 전 태풍 ‘솔릭’이 진로를 확정하고 제주도에 상륙한다는 시간부터 우리 모두는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늘만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초조함이 절정을 이루던 그날 태풍 ‘솔릭’의 공포로 밤새 뉴스특보를 보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서서히 긴장이 풀려 눈이 감길 즈음 요란스레 전화벨이 울렸다.

장수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시는 생산자다.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전화를 받자, 다행히 생각보다 목소리가 밝았다.

“이 대표님 이제 지나간 것 같은데요. 좀 낙과가 지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그리 피해가 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 정말 다행이네요. 얼마 정도 낙과가 된 것 같아요?”

“집집마다 조금은 다른 것 같은데 평균 10% 내외 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그 시간 이후 다른 생산자분들의 대체로 무사하다는 전화가 이어졌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문득 정말 고통스러웠던 몇 년 전이 떠올랐다.

2012년. 이맘때 태풍 ‘볼라벤’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날 우리에게 추석 사과를 공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생산 농가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참으로 참혹했다. 수북이 쏟아져 내린 사과들과 뿌리째 뽑힌 나무 옆에서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는 농민을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함께 울기만 했다.

그분은 일에 바빠 재해보험에 드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기를 놓쳐 하루 차이로 보험조차 들지 못했었다. 그 분이 겪었을 좌절감과 상실감 그리고 막막함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렇게 피해규모 확인과 생산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하늘이 하는 일을 어쩌겠어? 괜찮아. 내년엔 잘 되겠지. 이 대표 이리와 담배나 한 대 펴. 그나저나 물건을 못 대줘 미안해서 어쩐대. 큰일이네….” 이런 정도의 말들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더 속이 상해 말문이 막히고 돌아서며 또 눈물지을 수밖에 없었다. 바보 같이 이런 상황에서 무슨 우리 걱정을 한다고….

이렇게 한 없이 착하기만 한 사람들은 씨를 뿌리고 또 열심히 나무를 키운 죄 밖에 없는데 왜 이리 하늘은 매번 그렇게 이들을 힘들게 할까. 다음 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구름 한 점 없이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하늘이 더 없이 미워 실컷 욕을 퍼부어 주었다.

다행히 2018년 여름은 절망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 피 말리는 시간들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태풍이 지나간 뒤 조금은 마음을 놓나 했더니 엄청난 폭우가 멍든 농가들의 가슴에 들이친다. 특히 추석용 품종이라 해도 무방한 ‘홍로’ 사과 재배농가들에게는 냉해, 일소피해, 탄저병, 그리고 심한 밀병현상부터 피해가 크지는 않았지만 태풍까지 올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난이 찾아왔고 극심한 가뭄과 이상고온으로 과 크기까지 작아서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농민들에게 스페셜급 분노와 좌절을 더해주는 케이스가 하나 더 있다.

각종 언론에 ‘농산물 가격 폭등, 물가안정에 적신호’, ‘추석 장바구니 물가 비상’ 그리고 지금 같이 심각한 작황에서 뜬금없이 나오는 ‘사과 수급상황 이상 없어’ 등과 유사한 기사들이다.

이런 류의 기사들은 대부분 기사 내용 자체도 매우 축소 또는 과장 되어 극히 일부의 사례를 마치 전부인양 포장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할 경우 실제 현장의 분위기와는 완전 동떨어진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일쑤다.

물가상승의 주범이 진짜 농산물인가? 그렇다면 연중 태반이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 형성될 때가 많은데 그럼 그 시기 물가안정의 일등 공신도 농산물인가?

소비자 가격이 비싼 건 현 유통구조에서 보면 아주 극소수 매점매석이 가능한 품목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누가 폭리를 취해서가 아니고 다수 농민들이 망한 거다. 망한 농민의 땀과 눈물이 극히 일부 살아남은 농민에게 피로 가는 것이다. 때로는 과도하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가격결정에 적용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까지도 ‘사과 수급상황 이상 없어’라고 나오는 기사들을 보자. 저 기사가 뜬금없이 아직 수확이 한참 남은 만생부사를 이야기 한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지금 수확기를 앞두고 있는 ‘홍로’사과를 이야기 하는 것일텐데 정말 그럴까?

기사를 쓰면서 영호남과 충청권 사과 재배 농가들과 몇 통화 정도만 해 보았다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작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심각한 수준의 대형오보 기사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에게는 사과 수급 문제없다는데 왜 이렇게 비싸지? 라며 구매를 꺼리게 만들고 생산자들에게는 출하시기를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심각한 판단오류를 불러 올 수 있다.

난 우리 언론들에게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다. 농업전문지들을 제외하고는 농업전문기자 한 명 없는 곳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그냥 잘 모르고 관심 없으면 아예 다루지 말아 달라고. 그냥 놔두시라고. 그게 진정 우리 농민을 위하고 또한 국민을 위하는 것이다.

‘하늘이 하는 일을 어쩌겠어….’

늘 듣는 이 말이 올해는 더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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