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고라니와 함께

  • 입력 2018.09.07 15:04
  • 기자명 한영미(강원 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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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미(강원 횡성)
한영미(강원 횡성)

“옥수수 한 봉 심었는데 100통도 못 먹었어. 멧돼지 좋은 일 시킨 거지. 멧돼지가 다 먹어치웠어.” 이웃집 어르신이 작년에 하던 푸념을 올해도 하신다. 해동이 되자마자 완두콩 심어서 첫 현금을 만져보고 7월이 돼야 현금소득원이 되는 옥수수를 고스란히 멧돼지에게 바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까치, 비둘기, 멧돼지, 너구리, 고라니… 이름만으로는 정겹고 보호해야 될 거 같은데 얘들이 밭에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콩을 심으면 파먹기도 하고 예쁘게 올라온 연한 콩잎을 똑똑 따먹고, 곁순이라도 키워볼라치면 어느새 새순이 올라온 것도 홀라당 따 먹어버리기에 콩이나 녹두는 몇 번씩 심는 경우도 있다. 고구마, 땅콩은 이파리는 그대로 놔두고 뿌리 열매만 캐먹는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멧돼지, 너구리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막상 밭에 들어가 이 모습을 보면 허탈하기 이를 데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해 조수와의 전쟁’이라는 말도 생기고 짐승들에게 더 이상 뺏기지 말자는 맘을 먹고 덜 여문 옥수수를 따거나 땅콩을 캐는 농민들도 있다. 애써지은 농사를 스스로 망치는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

멧돼지와 고라니의 개체수를 줄여서라도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지만 보호종이라 마음대로 잡을 수 없는 조수 보호제도에 따라 일반 농민들은 잡을 수 없기에 전기 울타리, 노루망, 폭음기, 방조망 등을 설치하는데 이것들도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크레졸 희석액을 페트병에 담아 군데군데 심어 놓거나 계피를 끓여다 밭가에 뿌려놓기도 하고, 땅콩 밭에 커피찌꺼기를 뿌려놓기도 하고, 이것저것 별의별 방법을 다 써 봐도 한 번 들어와서 맛을 본 경우는 조기 수확 외엔 방법이 없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전기울타리는 근사해 보이지만 멧돼지에겐 껌이다. 그냥 타고 넘어 들어간다. 밭가에 쳐 놓은 노루망도 지긋이 즈려밟고 새끼들까지 데리고 들어가 콩잎을 따먹는 고라니를 ‘워이워이’하면서 새 쫓듯이 쫓아버리는 정도가 그나마 콩을 지키는 방법이다. 면사무소에 멧돼지가 작물을 망가뜨렸다고 신고를 하면 허가받은 전문 사냥꾼들이 밭에 나온다. 그런데 워낙 군 전체 피해면적이 넓어 사냥꾼이 하룻밤 둘러보는 정도로 몇 번 총을 쏘고 가다보니 피해는 줄어들지 않는다.

농민들이 풀과의 전쟁을 이야기했는데 이젠 유해조수와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멧돼지와 고라니, 까치, 오소리와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할까?

지난 여름 첫 농사를 짓기 시작한 초보농사꾼은 어쩌다보니 풀을 키웠단다. 고랑에 풀이 우거지다보니 노루도 멧돼지도 길을 못 찾았는지 풀 속에서도 자란 옥수수를 따먹었단다. 깨끗하게 밭 관리를 한 옆집 옥수수는 멧돼지가 다 먹어치운 걸 보더니 “농사를 잘 짓고 못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확물이 농민의 차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며 올해 처음 농사지만 농사 한 번 잘 지었다고 자랑을 한다. 짐승들도 사람처럼 편한 것을 좋아하나보다. 먹을 것을 찾아 산속을 헤매지 않고 농지로 내려오고 인가로 내려오고 도시로 내달리는 멧돼지를 보면 안쓰럽다. 공생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멧돼지와 고라니 개체수도 줄이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동물복지, 유해조수와의 전쟁을 이야기하기 전에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도록, 동물들이 자신들의 거처에서 온전히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태풍에도 버티고, 장대비에도 버티던 사과! 새가 와서 꼭 찍었네… 하나 둘 셋… 새가 쪼아놓은 사과는 왜 이리 맛이 좋은지? 새야 새야 안 잡아먹을테니 맛있는 사과 구별하는 방법 좀 알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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