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가격이 있는 노동, 가사노동

  • 입력 2018.09.09 13:38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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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밭에서 일하고 어둑어둑해져서 집에 들어오면 온 몸이 땀과 흙먼지범벅이다. 몸은 끈적끈적하고 목은 마르고 모기에 물려 가렵기는 하고…, 빨리 씻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샤워하고 얼굴에 로션이라도 좀 바르고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도 말리면서 한숨 돌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으면서도 남편 배 고플까봐 머리는 말리지도 못 한 채 봉두난발을 하고 싱크대 앞으로 달려간다. 조금이라도 빨리 밥상을 차리려고 넓지도 않은 부엌을 뛰어다니다시피 한다.

누가 배고프다고 재촉하는 것도 아니고, 가사노동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로는 외치면서도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내가 어디 간다고 하면 사위 밥은 누가 차려줄지 사위 밥 걱정부터 하는 엄마가 날 이렇게 교육 시킨 탓이라며 괜히 친정엄마 탓을 해 보기도 한다.

제사가 다가오니 시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제사가 다가오는데 어떡해야 하노?” 당신 아들은 자기 조상 제사 날짜도 모르고 제사상에 뭘 올려야 할지 아무 생각도 없는데 아들한테는 전화를 하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해서 제사 준비할 것을 은근히 요청 하신다.

‘저한테 전화하지 마시고 아들한테 전화해 보세요’라고 말 하고 싶은 생각에 입은 나오면서도 “예. 알고 있어요. 제가 알아서 준비할께요”라고 상냥한 대답이 나간다.

제사 준비는 나 혼자만 해야 할 일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외동아들 외며느리로 시집와 일 년에 열세 번이나 지내야 하는 제사를 군말 없이 하시고 “조상들 제사를 잘 지내야 자손들에게 복이 온다”며 설교를 하시던 친정엄마 탓을 또 괜히 해 본다.

폭염에 가뭄에 이제는 또 폭우에 몸살을 겪는 농작물들을 보며 함께 몸살을 앓는 우울한 중에 무지개 같은 산뜻한 뉴스를 듣고 기뻤다. 「여성가족부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 발표였는데 그 중에서도 청소, 빨래 등 ‘무급’ 가사노동의 값을 측정해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통계지표를 개발한다는 뉴스였다.

하루 24시간 중 4~5시간은 여성이기에 어머니이기에 며느리이기에 해야 하는 많은 노동들이 있다. 그 노동으로 몸이 망가져도 그것은 여성이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노동을 화폐가치로 매기는 작업을 한다니 참으로 반갑다.

이제는 더 이상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가치가 없는, 가격이 없는 노동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되는 사회를 기대해도 되려는지… 이 작업을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

가부장제적인 가족관계가 아직도 완고한 농촌에서 남성의 가사노동은 현재도 거의 0에 가깝다. 나는 지금도 마을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남성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하루 세끼 식사준비와 설거지, 빨래, 청소 다 여성농민 담당이다.

아침식사 준비는 다른 사람 다 잘 때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고 빨래는 밥 하는 사이사이 한다. 청소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해야 한다. 아이들 돌보는 일이나 아이들 등교 등 뒷바라지, 가정대소사는 농사일 하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한다.

그 뿐이랴. 농사일도 남성들보다 더 했으면 했지 덜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시대 슈퍼우먼 여성농민들이다.

이번 추석에 나는 보름달에게 이렇게 빌 것이다. “여성농민들의 노동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그 노동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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