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57] 극우입니까

  • 입력 2018.09.08 13:19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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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br>중앙대 명예교수

가끔 도시에 나와 지인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귀농·귀촌에 대해 묻기도 하고 답하기도 하면서 농촌살이 얘기를 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얘기에 대체로 공감해 주며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농촌은 아무래도 도시보다는 문화공간이나 의료여건이 열악하고 교통수단이 제한돼 있어 불편한 점이 많은 것 같다는 얘기도 해 준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살아오신 주민들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이해함은 물론 겸손하고 소탈해야 하며 먼저 다가가는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는 얘기도 해 준다.

그러나 농촌 지역은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함과 자연친화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산과 바다와 강과 계곡은 물론 역사유적과 유물은 도처에 널려있다. 뿐만 아니라 주거비·교통비 등 생활비용도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게 든다는 얘기도 해 준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제가 농촌과 농업의 실태와 대책, 농민들이 살아가는 얘기로 옮겨가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공감대가 확 떨어지는 경우가 많음을 요즘 들어 많이 느낀다. 너와 나의 얘기가 아니고 제3자라 생각하는 농민·농촌·농업 얘기로 옮아가면 이해의 정도와 관심이 너무나 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자주 있다. 심지어 농업계 인사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럴 땐 의아하기조차 하다. 남의 문제로 농민·농업·농촌 문제를 인식하면서 무슨 연구를 하고 대책을 찾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아도 쉽지 않을 농업문제가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이 나올 리가 없다.

최근 한 모임에서 농업·농촌·농민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다른 선진국들이 그러하듯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와 공공성을 고려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고, 그냥 이대로 시장기능에 방치하려면 자본주의체제에서 생산요소인 농지도 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시장논리에 맞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했다. 생산요소인 농지는 식량안보와 국토관리를 위해 묶어두고 그 생산물인 농산물은 시장기능에 맡긴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그러자 한 지인이 대뜸 ‘윤 교수는 극우입니까’하고 물었다.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자유롭게 하는 선진국이나 국가는 없으며 정부의 농지에 대한 이용과 규제는 자본주의체제라 하더라도 필수적인 것이니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취지인데, 지인은 농지이용의 자유화만을 크게 들은 것이라 이해하면서도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극우니 극좌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 논쟁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본래 인간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나름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따라 사유하고 판단하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농업·농촌·농민의 문제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이고 국가와 민족의 문제이며 이는 곧 나의 문제라는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생뚱맞게 굳이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겠다면 나는 극우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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