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청년 좀 그만 우려먹자

  • 입력 2018.09.08 13:17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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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5년, 박근혜는 ‘대한민국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느냐, 중동에 갔다고’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2016년 국정감사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었던 정운천은 ‘아프리카로 가면 나이지리아, 콩고, 동남아시아에 보면 캄보디아, 이런 전 세계 오지에 우리 청년 약 10만명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한때 대통령 출마를 꿈꿨던 반기문은 2017년 해외취업, 청년인턴 등을 이야기하면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진부한 말을 내뱉었다가 청년들의 반발을 샀다.

사실 청년실업에 대한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불거진 문제는 아니다. 이미 2004년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논스톱4’에 고지식한 고시생으로 출연한 배우가 했던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하는 이 때…”로 시작하는 대사를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2005년 성년의 날을 맞아 당시 열린우리당이 마련한 간담회의 주제도 청년실업이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유시민은 그것은 국가 책임이 아니고 각자 도생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청년실업대책이 공약으로 나온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청년들의 상실감을 채워주지 못한다. 흙수저당이라는 청년정당이 나오고, 헬조선이 마치 보통명사로 쓰이는, 포기할 것이 너무 많아 N포세대라고 불리는 오늘의 청년들. 알고 보면 이 청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야말로 지옥에서 살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조기교육에 시달려 온 세대다. ‘다 너 좋으라고 하는 일이다’라는 부모의 변명 속에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신세계는 열리지 않았다. 20대가 되어서도 성적에 목을 매고, 이력서를 채우기 위한 각종 경력을 쌓아야 한다. 이 청년들에게 과연 어떤 희망을 줄 것인가.

집권 이후 단 한 번도 농업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을 내지 않았던 정부가 청년실업과 농업정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었나 보다. 스마트팜으로 청년 일자리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 정부가 내놓는 홍보동영상을 보면 가관이다. 작업복을 입고 곡괭이질을 하는 농민이 아니라 양복을 입고 손에는 자동화기기를 들고 온실로 출근하는 청년농민이라니.

정부에서 1%의 금리로 1인당 최대 30억원까지 지원해준다는 스마트팜, 이를 위한 스마트팜 관련 교육. 언뜻 보면 이만큼 통 큰 정부가 없었던 듯 ‘농업’과 청년’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인다. 과연 그럴까?

스마트팜에서 말하는 그 시설은 이미 1990년대 구조조정 정책이 나오면서부터 농민들을 유혹했던 시설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최근 몇 년 사이 대기업이 직접 뛰어들어보겠다고 했다가 1~2년 만에 다들 포기했던 ‘농업’ 시설들이다. 이제 대기업이 포기한 ‘농업’이라는 사업에서 기업에게 남겨진 시설을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으로 농민들에게 팔아넘기려는 수작이다. 물론 국가도 스마트팜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그 비용의 상당부분을 책임진다. 구조조정 정책시절부터 대기업의 농업 진출 시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다들 포기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렇게 투자를 해도 그에 따른 수입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저곡가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이 땅에서 농산물이 제값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시설에서 생산을 늘린다고 한들 팔리지 않거나, 생산비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낮은 값에 팔린다면 결국 그 빚은 누가 떠안게 되는가. 어떻게든 돌파구 한 번 만들어보려던 ‘청년’농민들의 몫이 될 게 뻔하다.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필요한 이유는 그 노동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농산물 값을 이야기 하는 이유도 자신의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가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또다시 ‘청년’들을 팔아먹는가. 저 정부나, 이 정부나 이제 청년들 좀 그만 우려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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