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외로운 개혁, 계속하자

  • 입력 2018.09.02 10:1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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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시장은 농산물 유통과정에 있어 가장 밝은 양지에 해당하지만 동시에 가장 그늘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구조와 이해관계들은 외부로부터의 시각에 수많은 혼란과 사각을 부여한다.

폐단은 이런 곳에서 쌓인다. 하역비를 부당하게 전가받아도, 농사가 쫄딱 망하는 동안 도매법인 곳간에 수백억이 채워지고 상인들의 차가 벤츠로 바뀌어도 농민들이 부당함을 고하기엔 도매시장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 보지 못하는 사이 폐단이 쌓여 간다. 폐단이 쌓이면 적폐가 된다.

약자들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가락시장에서 외로이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다. 적어도 상장경매제와 그 폐단에 대해선 깊이 아는 만큼 충실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런데 최근 공사의 개혁이 잠시 법원에 가로막혔다. 바나나와 포장쪽파. 상장예외를 하든 안하든 농민들에게 직접적인 의미는 크지 않은 품목들이지만, 법원이 농안법의 ‘상장예외 원칙’을 강조한 것은 공사의 개혁 행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입장이다. 농안법에 대한 법원의 보수적인 해석을 확인할 수 있는 판결이었다.

아직 항소심이 남아 있긴 하나, 결국 농안법 자체를 대대적으로 손보지 않는 이상 도매시장 개혁이 동력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요원한 이상 국회도 손을 놓고 있고, 겉으로는 농안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농식품부도 실상은 딱히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등을 돌린 가운데 공사만이라도 개혁 의지를 다잡고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잘 모르고 관심갖기 힘든 곳에서 그저 포기하고 덮어 두면 그만일 것을, 굳이 힘겹게 애쓰고 있는 건 관리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앞뒤로 꽉꽉 막혀 있는 도매시장 개혁이지만, 공사의 양심이 있기에 더디나마 좀더 나은 도매시장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공사 신임 사장 인선을 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참신하고 파격적인 인사는 고사하고 농업과 하등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보은성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루머도 파다하다. 공사가 당면해 있는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면 무척 씁쓸한 루머다.

신임 사장은 노력 여하에 따라 공사의 개혁 의지에 기름을 부을 수도, 찬물을 부을 수도 있다. 신임 사장이 전임 사장들의 행적에 누가 되지 않는 굳은 심지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기자는 그런 사장과 그런 공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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