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가뭄에 바싹 말라 비오기만 기다렸는데….”

태풍 지난 뒤 집중호우 그야말로 ‘설상가상’
추석 출하 보름 남짓 앞두고 낙과 피해 심각
끝 모르던 폭우에 논·밭 침수 및 매몰 상당

  • 입력 2018.09.02 14:20
  • 수정 2018.09.02 14:27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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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의 과수원에 떨어진 배가 수두룩하다. 제19호 태풍 솔릭으로 인한 낙과 피해를 지난달 29일 조사하고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의 과수원에 떨어진 배가 수두룩하다. 제19호 태풍 솔릭으로 인한 낙과 피해를 지난달 29일 조사하고 있다.

폭염과 가뭄을 겪으며 겨우 키워낸 배는 강한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졌고 낟알이 한창 익을 무렵 농경지는 비에 잠겼다. 태풍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 때문이다.

제19호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전라남도 순천시에선 지난달 26일 기준 농경지 270ha가 침수됐고 배 91ha가 떨어졌다. 특히 낙안면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배를 재배하는 전체 220여 농가에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낙안면에선 농작물재해보험 산정을 위한 낙과 피해 조사가 한창이었다. 농민 김용화(71)씨는 자신의 과원 피해율을 90%로 전망했다. 김씨는 “사실 할 말이 없다. 좋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매스컴을 타면 피해가 심하지 않은 과원에도 영향이 있다”며 말을 아꼈으나 이윽고 “이번 태풍은 바람이 유난했다. 추석 출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가장 크기가 크고 상품성이 좋은 것들이 다 떨어졌다. 착과 조사 땐 158개로 집계됐는데 태풍이 지나고 나니 가지에 남아있는 배가 10개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모르는 사람들은 몇 개 달려있는 배라도 따서 수확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미 바람에 세게 흔들렸기 때문에 자라면서 떨어질 확률도 높고 가지에 긁힌 생채기도 많아 상품으로 판매할 수 없는 일”이라며 “떨어진 배도 그렇고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에도 버리거나 묻어야 하는 게 안타깝다. 정부가 나서서 가공방안을 마련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의 과수원에 떨어진 배가 수두룩하다. 농민들이 떨어진 배를 살피고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의 과수원에 떨어진 배가 수두룩하다. 농민들이 떨어진 배를 살피고 있다.

태풍은 보통약관으로도 보상되는 재해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했다면 사과·배·단감·떫은감 등 주요 과수 4종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농민 최대현씨는 “일반 시민들이 봤을 땐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어도 보험 들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은 재해로 인한 농가의 손실 부담을 조금 덜어주는 수준일 뿐”이라고 전했다. 최씨는 “배의 경우 1과당 생산비가 650~700원 정도 소요되는 데 보험에선 이를 750~800원 수준으로 산정한다. 자가 노동비와 보상비 정도가 포함된 것인데, 재해가 발생하지 않은 일반적인 경우 성수품 1개당 2,000원 정도로 판매된다”며 “보험은 그야말로 생계유지 수준일 뿐 농가가 보험으로 이익을 보는 게 아니란 걸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태풍 피해를 집계하기도 전인 지난달 26일 시작된 국지성 호우는 충청·남부를 비롯해 강원·경기 등 전국을 할퀴며 많은 피해를 야기했다. 특히 이틀 동안의 누적강우량이 500mm를 넘거나 최대 시우량이 100mm에 달하는 등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의 비가 쏟아져 피해가 더욱 컸다. 지난달 30일 잠정 집계된 자료에 의하면 농작물 침수 635.7ha, 농경지 매몰은 3.9ha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6일 순천시 주암면 복다리엔 오전 8시부터 약 3시간 동안 150mm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날 총 258mm의 비로 폭 7~8m의 용촌천이 범람했고 인근 농경지와 주택이 침수되는 피해가 잇따랐다.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복다리에 쏟아진 폭우로 하천이 범람했고 토사가 유출됐다. 벼를 비롯한 콩, 팥 등의 작물에 피해가 발생했다.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복다리에 쏟아진 폭우로 하천이 범람했고 토사가 유출됐다. 벼를 비롯한 콩, 팥 등의 작물에 피해가 발생했다.

용촌마을 이근조 이장은 “마을 내 36세대가 거주 중인데 16가구가 물에 잠겼고 농작물은 2ha 가량이 침수됐다. TV서 침수된 논 대부분이 배수가 완료됐다고 말 하던데 이게 가득 차 있던 물만 빠진 거지 갯벌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들어가서 누워있는 벼를 세울 수도 없고, 조금 있으면 문고병이라고 뿌리부터 썩어가는 병이 돌아 썩은 내가 진동할 것”이라며 “병도 병이지만 저렇게 물에 잠겼던 벼는 나락도 잘 안 여문다. 수확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수확할 때도 문제가 기계가 논에 못 들어간다. 토사가 쏟아진데다 바닥이 푹푹 들어가기 때문에 바지 걷어붙이고 일일이 손으로 베어야 한다”고 전했다.

덧붙여 인근 마을 농민 김재임(69)씨는 “병이라도 덜 돌게 방제를 해야 되는 데 어디나 그렇듯 지금 농촌 마을엔 전부 노인뿐이다. 지자체에서 이럴 때 기계로 방제도 해주고 하면 좋을 텐데 그런 걸 못하니 아쉽다”며 “올해 워낙 가물어서 과수, 벼, 콩이니 팥을 심었어도 잘 자라질 못했다. 비나 조금 내렸으면 했는데 비가 이렇게 많이 와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러다가 우리 농민이 지은 농산물을 앞으로 몇 년이나 먹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장은 “조사를 해 가도 별 소용이 없다. 일정 수준 이상 피해를 봐야 보상을 받는데 택도 없다. 그리고 지금 주택이며 농기계 보관하던 창고까지 다 물에 잠겼다. 망가진 농기계는 기백만원을 들여 다시 고쳐야만 쓸 수가 있는 데 피해 산정 대상에 포함도 안 된다”라며 “그냥 피해 당한 사람만 답답한거다. 이럴 때 정말 앞으론 농사 안 짓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한편 기상청은 세력을 키우며 북상중인 21호 태풍 제비의 경로를 예의주시할 것이라 전했다. 더불어 충청·남부 지방 등지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50mm 내외의 게릴라성 호우가 예상된다고 전망하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찰과 사전대비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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