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 틀의 근본 전환’을 이루려면
‘농정 틀의 근본 전환’을 이루려면
  •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9.02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지 15개월을 넘어 임기의 1/4이 지났다. 그동안 외교안보, 적폐청산, 경제정책기조 전환 등 거대 이슈에 가려 대선공약으로 제시됐던 ‘농정 틀의 근본 전환’을 포함한 농정이슈는 수면 아래로 잠복한 상태이다.

얼마 전 2기 농정이 출발한 시점에서 그동안의 농정 흐름, 농업·농촌이 직면한 3중고(苦)의 대응방향, 농정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핵심과제 등에 관해 짚어보기로 한다.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오리무중에 빠진 대선공약과 현안대응 농정 간의 괴리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농정공약은 ①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설치 ②쌀 목표가격 인상과 생산조정제 시행 ③공익형 직불제 확대를 통한 농가소득 제고 ④농업재해보험·교통·주거·교육·보육 등 농민복지 확대 ⑤여성농업인의 복지지원 확대 ⑥농협과 생산자조직을 통한 농산물유통체계 개선 ⑦농어업회의소 제도도입 등으로 요약된다.

초대 농정수장으로 9개월간 재임했던 김영록 장관은 취임사에서 당면 현안과 중장기 정책과제로 각각 몇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현안으로는 ①쌀값 회복 ②가축질병 대응 ③항구적 가뭄대책 ④자연재해관련 제도 개선 ⑤청탁금지법에 따른 농민피해 최소화 ⑥축산분야 공정거래질서 확립 등을, 중장기 정책과제로는 ①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증진과 직불제 확대개편 ②청년농업인 정착 지원과 지속가능한 농업의 육성 ③살고싶은 농촌 건설 ④국가 및 지역단위 푸드플랜 추진 ⑤미래성장동력의 확충 등을 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 1월의 「2018년도 주요 업무계획」에서 2017년 농정의 주요성과로 ①쌀값 회복 ②청탁금지법시행령 개정을 통한 농산물선물비 가액기준 조정 ③가뭄피해 최소화와 재해복구지원 강화 ④살충제계란·AI 등 위기에 대한 신속 대응 ⑤축산계열화사업 불공정관행근절대책 마련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당면현안에 집중한 결과 근본적 개혁 추진이 미흡했던 점을 보완해야 할 사항으로 들고 쌀값 회복을 넘는 종합적인 식량생산체계 개혁 및 밀식축산 사육환경문제 등의 근본적인 해결필요성을 적시하고 있다.

2017년 농정에 대한 농식품부의 자체평가내용은 1기 김영록 장관이 취임사에서 제시한 현안 우선, 중장기 정책과제의 점진적 추진이라는 2단계 접근기조에 따른 농정흐름을 재확인한 것이다. 문제는 당면한 개별현안에 대한 단편적 대증요법만으로는 우리 농업·농촌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나올 수 없다는 한계에 있다.

지난 3월 15일 1기 장관의 사퇴 이후 7월 26일 2기 장관 지명까지 4개월 이상 헌정사상 전례 없는 농정수장의 장기간 공백이 지속된 이상사태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는데 대한 농업계의 허탈과 분노는 농민단체들의 잇따른 성명과 시위, 연구단체의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달 10일 2기 농정수장으로 임명된 이개호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다섯 가지의 중장기 정책방향과 네 가지 당면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중장기 정책방향으로는 ①청년후계인력의 육성 ②공익형 직불제 개편 ③안전·친환경농업생산기반 구축 ④살기편한 농촌공간 조성 ⑤식량안보정책의 체계화 등을, 당면과제로는 ①청년일자리지원대책 ②농산물 제값받기 ③쌀 생산조정제 추진과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목표가격 재설정 및 축산환경개선과 축산물안전성확보 ④농식품산업의 혁신성장을 위한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조성, 기후변화대응중장기계획 수립, 사회적농업의 육성 등을 들고 있다.

1·2기 장관 취임사의 주요내용을 비교해보면 표현차이는 있지만 중장기 정책과제 중 청년농업인 육성, 공익형직불제 확대개편, 살기편한 농촌 조성 등 세 가지는 일치하며 푸드플랜 추진과 미래성장동력의 확충은 2기에서는 당면과제로 분류되고 있다.

2기에서 중장기 정책과제로 식량안보정책의 체계화가 새로이 제시되고 있는 점이 주목되며 당면과제 가운데 축산환경개선과 축산물안전성 확보, 기후변화중장기계획 수립, 사회적농업의 육성 등이 포함된 점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어젠다 설정으로 높이 평가된다.

진일보한 정책어젠다 설정에도 불구하고 2기 농정이 지향하는 기본 정책방향, 정책체계, 추구하는 가치 내지 이념이 명확히 제시되지 못하고 종래 농정과의 차별화가 미흡하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 아쉬움은 여전하다.

농업·농촌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지속가능발전, 다기능농업, 포용적 성장 등을 축으로 농정 선진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단이 요구된다. 장관 공석 5개월여만인 지난달 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의원의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농촌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지속가능발전, 다기능농업, 포용적 성장 등을 축으로 농정 선진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단이 요구된다. 장관 공석 5개월여만인 지난달 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의원의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한승호 기자

소득·분배·환경 등 3중고(苦)의 대응방향

개발년대 이래 한국농업이 채택해 온 발전전략은 규모화·전문화·집중화를 중심으로 한 성장지상주의였다. 생산확대를 추구하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농업성장을 주도한 요소는 감소하는 노동력과 한정된 토지자원을 대체하는 비료·농약 등 경상투입재와 농기계·대동물 등 고정자본의 투입증가였다. 한국 농업 산업화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기계화·시설화·집약화의 급속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시장개방이 본격화한 이후 한국농업의 급속한 산업화는 여러 측면에서 한계와 모순을 드러내게 된다. 먼저 성장과 소득간의 괴리에서 오는 농가소득의 정체 내지 하락추세이다. 1995~2014년 기간에 농가판매가격이 고작 9% 상승하는 동안 농가구입가격은 93%나 상승했으며 특히 고용노임은 156%, 농업용품은 142%가 올라 비용증가·수입감소의 메커니즘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경종농가는 농화학투입재 의존도가 매우 높고 축산부문은 수입사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취약한 생산구조가 심화되고 있어 2013년의 경우 자재투입비용이 경영비 전체의 62.5%를 차지하는 최대의 경영압박 요인을 이루고 있다.

농가호당 실질농업소득(1995년 가격)은 1994년의 1,734만원에 비해 2015년의 1,025만원으로 기간 중 41%가 감소했으며, 농외소득을 합한 실질농가소득 또한 1996년의 3,689만원으로부터 2015년의 3,389만원으로 8%나 줄어들었다.

도농간의 소득격차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어 도시가계 평균소득에 대한 농가평균소득의 수준이 63%까지 떨어지고 있어 농가소득문제는 시장기구를 통한 농산물가격 회복을 넘어 농가단위의 경영안정을 위한 새로운 정책체계의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농가소득정책도 생산확대와 개별품목의 시장가격지지라는 낡은 틀을 탈피하여 안전성과 친환경성을 전제로 한 안정공급과 국민적 동의를 토대로 한 재정지원을 통한 경영안정이라는 선진형 시스템으로 이행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둘째로 그동안 누적된 농가계층간의 소득양극화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어 포용적 성장의 관점에서 획기적인 정책전환이 요구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16년의 경우 소득상위 20% 농가의 평균수입은 하위 20% 가구 대비 11.3배에 이르며 이 격차는 2005년의 9.6배, 2015년의 10.4배로 확대되어 왔다.

도시의 경우 2016년 소득상위 20% 가구의 평균수입이 하위 20% 가구 대비 5.7배 수준에 있어 농가간의 소득불평등이 도시가구에 비해 극심하다. 농가소득의 계층간 불평등이 지나치게 심화된 원인으로는 초고령화와 경지면적에 비례지급되는 현행 직불제의 효과 등으로 분석되고 있다.

농가계층간의 극심한 소득격차를 완화하여 농촌사회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농촌 주민의 최소한의 삶의 질 확보를 위한 복지체계 도입노력을 적극화하는 동시에 쌀에만 편중되고 면적비례로만 지급되는 직불제를 농가단위 경영안정과 농촌환경보전 등 공익기능의 증진과 연계된 새로운 제도로 전면 확대개편하는 정책으로 전환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농화학투입재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가축사육의 과밀이 환경에 미친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헥터당 연간 화학비료소비량이 아직도 198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농약의 헥터당 연간 소비량도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증산을 위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고투입영농은 경영비 압박을 넘어 환경부하와 식품안전 측면에서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례행사가 된 가축질병은 대량의 살처분과 사체매립 등으로 인한 국민의 먹거리안전에 대한 불안감 증폭, 소비자가격의 급등락, 방역·살처분에 소요되는 재정부담 등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성장지상주의 축산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검토만으로도 그동안의 성장지상 농업발전전략이 농가소득의 정체·감소, 계층간의 지나친 소득불평등, 먹거리불안의 심화, 국토 및 환경의 심각한 훼손 등 갖가지 부작용을 누적시킴으로써 농업·농촌·먹거리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어 지속가능성과 다기능성을 핵심개념으로 하는 농정패러다임으로 대전환이 불가피한 시대적 요구임을 직시해야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농정 틀의 근본 전환’은 바로 이러한 농정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민 건강과 생명, 농업을 살리는 일은 게을리 할 수 없다. 어떤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철학과 사상으로 무장돼 있는가에 달려 있다.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한 농정 공약의 이행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농어민이 대접받는 나라’를 주제로 농정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민 건강과 생명, 농업을 살리는 일은 게을리 할 수 없다.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한 농정 공약의 이행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농어민이 대접받는 나라’를 주제로 농정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정패러다임 전환 위한 핵심과제

먼저 종래 농정에 대한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서는 정책집행부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유능한 전문가집단으로 하여금 6개월 정도의 집중작업 여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실무부처보다는 상위기구 예컨대 총리 직속의 한시자문기구를 구성하고 실무지원도 전문연구기관이 담당하며 관계공무원은 자료제공과 현황설명을 맡는 식의 역할분담이 바람직할 것이다.

농정평가를 위한 전문가위원회의 과업은 다양한 기존 연구성과를 농정혁신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정리하는 작업으로 충분할 것이며 활동성과는 공개돼 후속 정책입안작업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농정평가위원회의 구성은 농업·농촌·식품 이외에 환경·복지·교육·문화·소비자 등 다양한 관련분야 전문가를 포함하고 특정 입장을 대변할 우려가 있는 각종 이익집단의 대표자 등은 배제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 1997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보수당 18년 집권기간의 농정에 대한 철저한 정책평가를 통해 과거 정책에 대한 반성과 농정전환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2000년대의 새로운 농정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토대를 구축한 사례가 있다.

둘째로 대통령자문 특별기구 설치문제가 조속히 마무리돼 중장기 농정혁신의 기본방향 수립을 위한 여론수렴기구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왜 굳이 대통령직속기구냐 하는 견해가 없지 않지만 농업·농촌·먹거리문제에 관련된 농식품부 업무영역 밖의 많은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는 농식품부 장관자문기구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현행 농정패러다임의 전면적 재검토를 위해서는 농업·농촌 내부의 문제에 못지않게 사회 전반과 농업 간의 관계, 사회를 위한 농업·농촌의 복합적 역할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요구되므로 경제, 사회, 문화, 환경, 지역, 소비자 등 관련 각 분야의 폭넓은 전문가 참여가 필수적이다.

대통령특별기구의 역할은 ‘농정 틀의 근본 전환’을 위한 관련 분야의 여론수렴을 위한 한시기구로 충분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법정기구화를 위한 입법과 대규모 예산조치가 필요하지 않다.

우선 대통령령을 설립근거로 하고 약간의 예비비를 활용하는 1년 정도의 한시자문기구로 출범하고 필요에 따라 기능보강을 위한 입법 및 예산조치를 추후에 해나가면 될 것이다. 특히 임기의 1/4을 경과한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실기(失機)하지 않도록 조속히 구성·발족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극심한 불균형과 저성장이 일상화된 뉴노멀시대에 국제비교에서도 사회적 포용성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하는 한국 농촌정책의 입안에 있어서는 포용적 성장의 중요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7년도 「포용적 성장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경제권 가운데서 한국의 사회적 포용성은 남유럽 재정위기국가(PIGs)들과 함께 최하위 그룹에 속하며 농촌지역은 한국사회 안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이 특히 심각한 상황에 있음에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 농업·농촌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지속가능발전, 다기능농업, 포용적 성장 등 세 개의 키워드를 축으로 농정 선진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단이 시급히 요구된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