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농경사회 사람들] 그 여자 멸치 사냥법③
[내가 만난 농경사회 사람들] 그 여자 멸치 사냥법③
  • 이중기 시인
  • 승인 2018.09.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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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기 시인

오른손을 등 뒤에 올려 고무줄이 늘어진 몸빼바지 끝을 지그시 누른 채 왼팔을 휘휘 내저으며 땀봉댁은 건어물전으로 향한다. 가다가 엉거주춤 서서 바지를 한번 추스른 뒤 실눈으로 건어물전 전체를 두어 바퀴 휘둘러본다. 영천은 큰 장이라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잘 가는 말도 영천장이고 못 가는 말도 영천장’이라는 말이 전해져오고 있지 않는가. 어디 그것뿐인가. 영천장에 콩 팔러간다는 풍자는 또 얼마나 유명했던 이야기인가.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전만해도 경북에서 영천장이라면 그 이름이 뜨르르했다.

건어물전에 들어서면 첫 번째 가게는 쓰윽 한번 살펴보는 것으로 끝내고 그 다음 가게 앞에서 발길을 세운다. 가게주인은 물건 설명하랴 흥정하랴 계산하랴 늘 분주하다. 땀봉댁은 멸치를 수북하게 쌓아놓은 함지 앞에 서서 이윽히 내려다보다가 가게주인을 힐끗 살펴보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에 멸치를 한 줌 쥔 손이 몸빼바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가게주인이 물건 값으로 받은 큰돈을 전대에 넣고 잔돈을 세는 사이이거나, 손님이 주문하는 물건을 찾기 위해 등을 돌리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잽싸다. 물건을 사기 위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옆 사람에게도 들켜서는 안 된다.

보란 듯이 멸치 하나를 집어 든 땀봉댁은 입 속으로 넣지 않고 꼬리부분을 앞니로 잘근잘근 깨물면서 두어 가게 지나쳐서 다시 멈춘다. 그사이에 멸치는 뱃속으로 들어가고 없다.

“보소, 이 멜치는 얼만기요?”

노다지로 쌓아놓고 건네주는 돈의 무게만큼만 덜어주는 물건에 값이 어디 있겠는가만 땀봉댁은 굳이 그렇게 물어본다. 가게주인이 힐끗 돌아보며 한마디 툭 던지고는 바빠지는 사이에 땀봉댁 손은 또 몸빼바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주머니에서 나온 손이 이번에도 천천히 멸치 하나를 앞니 사이에 물려준다. 잘근잘근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아따 이 집 멜치 몸피는 와 이래 터실터실하노.”

물때가 안 좋다고 애꿎은 멸치에게 타박만하고 땀봉댁은 슬쩍 또 옆 가게로 흘러간다.

“보소, 이 멜치는 우예하는기요?”

사람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 속에서 땀봉댁 질문이 가게주인 귀에까지 가닿을 리야 애초에 없다. 한쪽 손에 들린 보퉁이가 한쪽 손이 하는 일을 살짝 겨주는 사이 땀봉댁 몸빼바지 두 주머니는 제법 불룩해져 있다. 그때쯤이면 건어물전도 한 바퀴 돌아 끝이 보인다.

“아따 이 집 멜치는 물때도 곱다. 백 언 어치만 주소.”

맨 마지막 가게 앞에 턱 버티고 선 땀봉댁이 비로소 호기롭게 외친다.

“아지매요, 멜치 백 언어치를 우예 파는기요. 그라지 말고 마 멫마리 들고 가소.”

“팔기 실으믄 치아뿌소. 내가 걸배이도 아이고 남의 물건은 와 꽁짜로 들고 가노.”

기분이 단단히 상했다는 듯이 땀봉댁은 팽 돌아서서 인파 속으로 묻혀버린다. 그것으로 그녀의 건어물전 순례는 끝이 났다. 오늘 지나쳐 간 가게는 다음 장날에 들릴 것이다.

사족 하나. 땀봉댁, 평생 남의 집 솥에서 익혀낸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던 그녀는 내 고모였다. 딸만 내리 둘을 낳았다는 죄목으로 시집에서 내침을 당한 그녀의 파란만장 생애는 내게 흐릿한 흑백 풍경 이야기로 남아 이렇게 세상에 까발리고 말았다. 그 죄, 깊고도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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