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트랙터로 품앗이 한다고?

  • 입력 2018.09.01 11:07
  • 수정 2018.09.04 13:47
  • 기자명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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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br>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촛불집회를 단숨에 촛불항쟁으로 승화시킨 것은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였다. 남녀노소 모두가 축제처럼 참여하는 콘서트 현장에 나타난 트랙터는 지난 70년 쌓이고 쌓인 적폐 청산이야 말로 항쟁의 목적이 돼야 한다고 호소했으며 국민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김기춘의 국정농단 심판이 체제와 질서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발전했다. 이게 나라냐? 촛불 민중은 물었고 분단과 신자유주의, 대기업과 기득권만 행복한 나라는 민중의 나라가 아니라고 스스로 답했다. 체제와 질서에 도전한 전봉준 장군의 정신과 기개는 트랙터를 타고 물리적 힘으로 작용했다.

고 백남기 농민이 운명한 2016년 9월 25일 이후 5개월 만에 박근혜는 탄핵됐다. 그 자리에 전봉준트랙터가 있었고 트랙터에 올라탄 전농 김영호 전 의장은 농민투쟁의 역사적 승리를 선언했다. 전봉준트랙터를 처음 제안한 사람도, 이름을 전봉준트랙터로 명명한 사람도 김영호 전 의장이었다. 평화 집회로 국민전선이 확대되는 마당에 트랙터는 폭력을 덧씌우려는 반대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걱정과 민중총궐기를 끝내고 농민진영에서 다시 동력을 살릴 수 없다는 우려를 뛰어 넘었다.

지난달 28일 전농 2차 중앙위원회를 통해 통일트랙터 사업이 결의됐다. 통일트랙터 사업은 11월 25일 경 남북농민추수한마당(금강산)이 개최되는 시점에 맞추어 농민들이 준비한 트랙터 50대를 몰고 분단선을 넘자는 사업이다. 김영호 전 의장의 건배사는 전농의 공식(?) 건배사로 통용될 만큼 유명하다. ‘무기장사꾼 미국을 몰아내고 분단의 철조망을 녹여 통일의 농기구를 만드세!’ 이 구호가 통일트랙터 사업의 정신적 토양이 됐음이 분명하다. 2차 중앙위를 통해 김영호 전 의장은 “가을갈이, 겨울갈이가 한 해 농사의 시작”이라며 남북 농업교류와 협력을 뛰어 넘는 남북 공동체 농업을 제안했다.

품앗이는 마을 단위별 공동영농의 노동집약 방식이며 농민의 생존 방식이다. 품앗이는 주고 받는 주객체가 분리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하는 방식이다. 누가 더 많이 주고 누가 더 많이 받는 계산이 통할 리 없다. 논을 갈아야 농사가 된다. 통일트랙터는 가을갈이, 겨울갈이를 남북 농민이 같이하는 품앗이 도구인 것이다.

전농이 제안할 ‘통일농기계 품앗이 운동본부’의 명칭은 이렇게 완성됐다. 운동본부 이름에 품앗이가 들어가는 예를 해방 이전에도 해방 이후에도 찾을 수 없다. 이번엔 트랙터가 품앗이를 하고 내년엔 이앙기가 품앗이를 할 것이다. 북의 농민이 내려와 강원도 고랭지에, 새만금 간척지에 옥수수와 콩을 심는 것이 품앗이다.

통일트랙터 명칭은 강원도연맹의 한 활동가가 명명해 주었다. 이 간부는 2월 평창올림픽 때 전농이 제안한 평창통일문화제를 현장에서 모든 품을 들여가며 여러 날 실무를 챙겨준 헌신적인 간부이다. 그는 “전봉준트랙터가 박근혜정권을 물리쳤다면 이제 통일트랙터가 분단의 철조망을 넘는 일이 남았다”고 제안했다. 전봉준트랙터 1차 봉기의 구호는 ‘한강을 넘자’였다. 전농 박행덕 의장은 ‘선을 넘자’고 했다. ‘가자 금강산으로, 통일트랙터야! 선을 넘자’가 이번 투쟁 전농의 구호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 사이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과학과 이론과 신념이 충돌한다. ‘과학은 현실을 앞서지 못한다. 다만 반영할 뿐이다.’ 트랙터가 정말 대북제재를 뚫고 분단의 철조망을 넘을 수 있는지 과학적 전망을 대라면, 9월부터 어느 나라 지도자의 방북과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11월 미국 중간선거까지 조금 구구하게 설명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그저 예상일 뿐, 현실을 앞서진 못한다. 현실은 언제나 변화를 바라는 민중이 만들어 왔다. 민중이 가는 길이 과학이었다.

농민들은 트랙터 50대를 준비하는 것 보다 실지 북으로 품앗이 갈 수가 있는가를 우려하고 걱정한다. 전농은 이미 선을 넘었다. 통일트랙터 50대를 결의한 순간부터 의식의 확장, 실천의 비약이 결의 속에 이미 있다. 해야한다면 할 수 있다고 믿고 하자. 절실하면 지혜가 모이고 서로 믿으면 철벽을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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