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고부갈등, 장서갈등

  • 입력 2018.09.02 11:06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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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결혼 후 6년을 시댁에서 살았다. 하우스를 다른 마을에 지으며 관리사 명목으로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자연스럽게 분가 아닌 분가를 하게 되었다.

고부갈등이 딱히 심한 편이 아니었지만 분가를 하던 날 어깨를 누르던 무언가가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존재만으로 심리적 압박이 있었을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하우스를 짓던 때 나는 둘째아이 출산을 위해 친정에 머무르고 있었다. 출산 후 이십일도 되지 않아 시아버지의 임종을 계기로 친정엄마는 갓난아이를 안고 장례식을 함께 치렀고 그 이후 지금껏 나랑 함께 살고 계신다.

“수렁에 너무 깊이 빠져버렸어.”

친정엄마가 나를 보면 하는 말이다. 갔어야 했는데… 그때 갔어야 했는데….

며느리는 시댁에서 앉아 있을 겨를이 없이 분주히 부엌을 오간다. 딸은 집에서 피곤해 죽겠다며 축 처져 밥도 안하고 밥상을 받고 있다.

‘안 그래야지 내가 그러면 진짜 나쁜 년이야.’

머리는 끊임없이 나를 향해 꾸짖지만 딸은 게을러지고 엄마에게 점점 더 깊게 의지하고 있다. 편함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 무렵 장모와 사위는 기 싸움을 하고 있다. 나는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다. 그 정점에 내가 자리하고 있음을 안다.

결혼과 동시에 맺어진 가족관계, 딸과 아들이 며느리가 되고 사위가 되어 얽히고설킨다. 갈등의 시작이 무엇일까? 고민이 된다. 가족 안에서의 권력관계는 언제부터 자리매김 하게 되었을까? 시어머니는 친정어머니께 함부로 말을 한다. 딸을 낳은 미천한 존재가 하늘같은 지아비를 만나게 되었으니 대접받고 싶으신 걸까? 물론 본인에게도 딸이 셋이나 된다.

맨발로 뛰어나와 반기고 씨암탉을 삶아 대접한다는 사위, 좋은 곳으로 시집가길 바랐건만 어찌 농사짓는 놈을 만나 생고생 하는 딸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미움이 생기나 보다.

두 분의 어머님은 여전히 자기 자식이 조금 더 아까운가 봅니다. 가족관계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권력관계는 개인의 기질적 특성으로 강약은 있을지언정 개별적 관계의 특성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가족 간에 나타나는 수직적 권력의 형태는 인간관계의 파탄이나 가족 해체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장모와 사위 그 가운데 끼게 되면서 고민의 깊이는 더해 갑니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다양한 경우를 역지사지 해보게 됩니다. 딸을 셋 씩이나 낳은 엄마이면서도 미숙한 존재의 딸로 머물러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나이 오십이 되어 이제야 딸의 허물을 벗으려 합니다.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해 지는 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깨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존재만으로 위축되지 않고 모두가 ‘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서게 될 날을 고대해 봅니다.

여자로 태어나 딸을 낳고 사위와 시댁의 눈치를 보고 있는 엄마는 이제 역사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겠지요? 마지막 페이지를 미처 넘기지 못하는 두 분 어머니께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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