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폐결핵⑤ 결핵은 미인을 좋아한다?

  • 입력 2018.09.02 11:0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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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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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소설작품이나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주인공들이 걸리는 병명이 매우 다양하고 또 구체적이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요절하는 ‘비련의 주인공들’ 대부분은 결핵으로 죽는 것으로 설정이 됐다. 예술작품이 시대상을 담는 그릇이라 할 때, 그만큼 결핵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것은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독일 출신의 노벨상 수상작가 토마스 만은, 결핵에 걸린 부인을 돌보기 위해 스위스의 요양소에 들어갔다가, 그 요양소에서의 체험을 ‘마의 산’이라는 걸작으로 빚어내어 세상에 남겼다.

결핵에 걸려서 요양 차 시골에 내려온 총각 혹은 처녀가 현지에서 이성을 만나 사랑을 싹틔우고… 그러나 결국 그는 피를 토하고 죽는다. 이런 유의 신파 스토리는, 애인의 뼛가루를 강물에 뿌리는 장면으로 완결된다. 이런 식의 줄거리 구조를 갖춘 옛 영화나 소설 작품들은 애를 쓰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그런데 결핵에 걸린 여자들은 건강한 여자들보다 훨씬 더 예쁘게 보인다고 송선대 제남병원 원장은 얘기한다. 송선대 씨가 국립마산결핵병원에 근무할 때 그의 친구가 병원에 찾아와 병상을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송 원장, 이 병원에 올 때마다 궁금해지는 게 하나 있는데…아니, 결핵이라는 병은 미인들만 찾아다니며 괴롭히나?”

친구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송 원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예쁜 사람만 결핵에 걸리는 게 아니라, 결핵에 걸리면 예뻐지는 거야.”

평소 농사일을 하는 시골 여인들은 태양광선에 노출되어서 얼굴이 검게 탄 모습인데 결핵환자들은 빈혈 때문에 얼굴에 핏기가 없고 창백하니까 얼핏 보기엔 매우 예뻐 보인다는 얘기다.

주인공이 결핵에 걸려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영화나 소설로 감상할 때에야 그 비장미에 감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이나 의료진들에게는 그런 고통이 따로 없다.

“전도양양한 젊은이들의 희생은 더욱 안타깝지요. 입원 환자 중에 한 고3 학생은 공부를 아주 잘 해서 세칭 일류대학 경영학과의 합격증을 받아놓고 있었어요. 그 학생은 졸업하면 취직을 하지 않고 공부를 더 해서 교수가 되겠다고 했는데…물론 나는 그 학생이 생명을 부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어느 날 출근했다가 새벽에 그가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송선대 원장에게 또 한 명의 잊히지 않는 환자가 있다.

“공주의 결핵병원에 근무할 때 동학사라는 절의 여승 세 명이 결핵환자로 입원해 있었어요. 치료가 잘 돼서 일단 퇴원을 했지요. 내가 마산결핵병원으로 옮겨가 있던 어느 날 그 중 한 스님이 전화를 해왔어요. 그 사이에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통도사에 가 있다고 했는데, 암만해도 결핵이 재발한 것 같으니까 입원을 좀 주선해줄 수 없겠느냐고….”

그런데 당시 마산결핵병원의 여자 병동은 병상이 꽉 차서 받아줄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일단 아무 병원에나 가서 치료를 받으라, 병상이 나면 바로 연락하겠다, 그랬는데 얼마 뒤 그 스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결핵환자는 2만8,161명으로 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결핵은 후진국 병이고 우리는 선진국이 됐으니 걱정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위험하다고 의사들은 얘기한다. 이제 결핵은 하늘이 내린 저주도 재앙도 아닌, 치료만 하면 나을 수 있는 전염병이다. 내가 언제든 결핵균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그 험한 시절부터 결핵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몸바쳐온 의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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