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바야흐로 때가 무르익고 있다

  • 입력 2018.08.26 13:17
  • 기자명 이대종(전북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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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종(전북 고창)
이대종(전북 고창)

고요하던 들판에 바람이 일어나고 하늘엔 두터운 구름장이 깔린다. 쭉나무 높은 가지에 사는 꾀꼬리 가족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몹시 신경에 거슬리는 이 아침, 온 나라가 태풍에 긴장해 있다. 유난히 무덥고 가물었던 여름의 막바지, 우리 농민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태풍을 긴장 속에서 주시하고 있다. 바라기는 그저 가뭄이나 해소하고 무더위나 몰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태풍은 이미 남쪽 섬 제주도를 무참히 할퀴고 있다. 이번 태풍은 우리에게 또 어떤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인가. 오늘과 같은 태풍을 앞두고 농민들은 단단히 채비하고 태풍에 맞서는 것 외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농민들은 연장을 챙겨 또 다시 들판으로 나설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자연재해 앞에 취약한 농업, 농민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다만 안타깝고 허무한, 입지 않아도 될 피해들이 태풍의 와중에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입지 않아도 될 피해는 대부분 ‘인재’에 해당한다. 이런 피해는 자연재해의 와중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기에도 무시로 발생한다. 우리들 가슴 속에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는 인재의 전형은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돼왔다. 이는 비단 최루탄, 몽둥이, 물대포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민중들에게 유형, 무형의 폭력을 행사한다. 우리 농업계에 가해지는 ‘농업정책’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어떠한가? 수십년 지속되어온 ‘개방농정’의 사례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수십년 역대 정권에 의해 강행되어온 개방농정의 아수라장 속에서 우리는 광장에서 맞아죽기도 하고, 캄캄한 골방과 창고에서 농약을 마시기도 했으며, 무수한 농민들이 정든 고향을 등져야 했다. 오늘날 우리 농업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은 개방농정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자행한 초대형 인재에 해당한다.

우리는 최근에도 개방농정에 맞서 싸우던 한 농민을 잃었다. 일평생을 독재권력과 맞서 싸웠던 늙은 농민의 죽음 앞에 수많은 농민이 궐기하고 전 국민이 광장에 나서 마침내 불의한 독재권력을 몰아냈다. 우리는 광장에서 환호했다. 민중의 힘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새롭게 들어선 정권은 스스로를 촛불정부라 칭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정부가 ‘개방농정’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진정 혁신적인 새로운 농정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는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에서 농정은 실종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무관심, 무대책, 무책임을 아우르는 ‘3무농정’이라 하겠는가. 그런데 스마트팜 밸리사업은 또 무엇인가? 이명박·박근혜 시절 우리 농민들이 관 속에 몰아넣고 못질한 재벌농사의 망령이 또다시 관뚜껑을 열고 돌아왔다. 어디 이 뿐인가? 밥쌀용 쌀 수입, 농업예산 삭감 등 이명박·박근혜의 반농업 정책이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다. 이 정도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외치던 박근혜 시절의 구호를 다시 들어야 될 판이다.

태풍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모질게도 가물고 무덥던 여름도 지나갈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애써 힘쓰지 않아도 될 일이다. 하지만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현 정권에 의해 또다시 자행되는 농업무시, 농민말살 정책, 되살아오는 적폐농정의 망령은 저절로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우리 농민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달려들어 싸울 때만이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싸움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바야흐로 때가 무르익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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