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고춧값을 폭등이라 말하나

터무니없이 값싼 수입산에
조금만 올라도 ‘폭등’ 오해
설 자리 없는 국산 건고추

  • 입력 2018.08.24 17:14
  • 수정 2018.08.27 10:1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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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일부 언론이 최근 1만원대에 이르는 고추가격을 두고 ‘폭등'이라 전하지만 농민들의 생산비를 고려했을 때 적정가격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3일 전북 진안군 동향면의 고추밭에서 한 여성농민이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여성농민은 “폭염과 가뭄 탓에 수확량이 현저히 줄었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일부 언론이 최근 1만원대에 이르는 고추가격을 두고 ‘폭등'이라 전하지만 농민들의 생산비를 고려했을 때 적정가격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3일 전북 진안군 동향면의 고추밭에서 한 여성농민이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여성농민은 “폭염과 가뭄 탓에 수확량이 현저히 줄었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햇고추 수확기인 8월 건고추 가격이 2012년 이래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근(600g)당 1만원으로 시작한 산지가격이 다소 기복은 있지만 현재까지 1만원대 초중반을 오가고 있다. 8,000원 수준이었던 평년 8월 가격과 비교하면 30%에서 많게는 2배 가까이까지 뛴 가격이다. 이미 유수의 매체들이 건고추 ‘폭등’ 소식을 다급하게 전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건고추는 폭등이 아니다.


생산비 감안하면 ‘적정가격’

농산물에 매겨져야 할 적정가격이 대부분의 품목에서 저평가돼 있지만 건고추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품목이다. 농산물의 적정가격은, 최소한 농민들의 영농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생산비’를 감안해 따져봐야 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건고추 생산비는 보통 근당 7,000~8,000원선으로 책정된다. 하지만 건고추 산지가격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계속 4,000~6,000원의 극심한 폭락에 빠져 있었다. 10a당 농가 순수익을 살펴보면 2013년은 12만원, 2014년은 16만원, 2016년은 44만원대의 적자가 발생했다. 유일하게 흑자가 난 2015년의 순수익은 고작 3만원이다. 3,000평의 고추농사를 지었다고 가정하면, 2015년 한 해 30만원을 벌고 나머지 3년 동안 720만원 이상을 손해봤다는 얘기다.

모처럼 가격이 올라왔던 지난해는 어떨까. 가뭄과 우박이 겹쳤던 지난해 건고추 산지가격은 1만원대 초반에서 시작해 줄곧 8,000원선을 유지했다. 하지만 수확량이 줄어든 만큼 생산비 또한 평년보다 높아져 9,978원을 기록했다. 10a당 순수익은 12만5,220원. 쌀값이 30년 전으로 회귀했었다는 2016년 벼농사 순수익(18만1,825원)과 비교해도 30%나 낮은 수익이다. 단순히 수치상으론 30% 차이지만, 벼농사에 비해 월등히 노동집약적이고 재배규모 자체가 작은 고추농사의 특성을 생각하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수익인지를 알 수 있다.

올해 또한 폭염·가뭄에 태풍 피해가 겹쳤다. 지역별로 편차는 있지만 오히려 지난해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는 농민들도 있다. 적어도 평년보다는 생산비가 훌쩍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본다면 1만원대 초중반의 최근 산지가격이 폭등이라는 말에는 의문이 붙을 수밖에 없다. 출하가 진행될수록 가격이 확연히 떨어지는 건고추의 특성을 감안하면 오히려 현재 가격은 적정가격에 가까워 보인다.

 

원흉은 수입이다

건고추 가격을 폭등으로 오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폭락이 만성화됐기 때문이다. 근당 4,000~6,000원의 처참한 가격이 몇 년이나 지속되다 보니 소비자들은 으레 이를 적정가격으로 여기고, 정부가 애용하는 ‘평년가격(최근 5개년 가격에서 최고·최저치를 뺀 평균)’에도 이 가격이 반영된다.

폭락의 원인은 단연 수입이다. 건고추엔 270%의 고율관세가 매겨져 있지만 냉동고추나 다대기의 관세는 27%에 불과하다. 국내 유통되는 수입 고춧가루의 대다수가 냉동고추·다대기 형태로 들어온다. 관세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산 고춧가루(냉동고추 가공)의 국내 판매원가는 근당 5,000원 미만이다.

수입에 치이고 폭락에 지친 농가들이 속속 고추를 포기했지만 그 빈자리를 고스란히 수입산이 메웠을 뿐 공급과잉과 만성폭락 구조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2000년에서 2017년까지 국내 재배면적이 7만4,471ha에서 2만8,337ha로 줄어드는 동안 수입량은 2만9,915톤에서 12만2,484톤으로 늘었다. 87%에 달했던 고추 자급률은 31%로 추락했다.

천재지변이 겹쳐 겨우 가격이 올라온 상황에서도 농민들은 국산고추 소비감소를 걱정해야 한다. 수입산과 가격차가 벌어지면 외식업체와 식품기업들이 수입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국산고추엔 다시 폭락이 찾아오지만, 돌아선 발길은 여간해선 되돌아오지 않는다. 수입고추가 국산고추 가격을 계속 생산비 밑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형국이다.

농업이 지속되려면 농민들이 제값을 받아야 한다. 구조적으로 제값 받기 힘든 건고추가 요행히 제값으로 올라왔지만, 대중은 폭등이라 한탄하고 업체들은 등을 돌린다. 관세가 허물어진 농산물 개방의 말로를 건고추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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