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폐결핵④ 국립목포결핵병원

  • 입력 2018.08.26 15:2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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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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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송선대 씨가 보건사회부 소속의 공무원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의 보건대학원에서 국가관리 질환, 그 중에서도 결핵분야를 연구하고 돌아온 때가 1982년이었다.

귀국 후 그는 <국립목포결핵병원>의 초대 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는데, 당시 그 병원은 노르웨이에서 파견된 사람이 의료 원조 차원에서 한국의 아동 결핵환자들을 수용해서 치료하던 시설이었다. 그러니까 노르웨이 측에서 그 의료기관을 한국정부에 넘겨주면서 ‘국립목포결핵병원’이라는 간판을 새로 달았고, 송선대 씨가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송 선생 같이 젊고 유능한 의사에게 인계를 하고 떠나게 돼서 마음이 가볍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같이 지내면서 인계인수를 하십시다.”

송선대 씨에게 병원을 인계한 전임 원장은 노르웨이에서 온 사회사업가 레케보(D. K. Rekkebo)였다.

모름지기 1980년대라면, ‘남루’와 ‘가난’ 따위로 상징되는 60~70년대에 비할 바 아니게 제법 살 만한 시절이라 여길지 모르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목포결핵병원의 신·구 원장의 인계인수 장면을 엿보자.

-장부를 보니까 입원해 있는 아동 환자들이 총 80명이고 의사는 세 명이네요. 그런데 교사 한 명은 뭣 하는 사람입니까?

-입원환자 중에서 학교에 갈 나이가 된 아이들에게 국민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아하, 그렇습니까. 그리고 이건 무슨 구호양곡 배급 장부 같은데…병원에서 누구한테 양곡을 배급하지요?

-결핵에 걸린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가난합니다. 그래서 구호사업으로 밀가루를 나눠 줍니다.

물론 병원 운영비용이나 주민들에 대한 구호품은 노르웨이 정부의 원조로 지금껏 조달해왔습니다. 이제는 국립병원이 됐으니 한국 정부에서 해야 할 몫이지요.

-구호양곡을 한꺼번에 한 포대씩, 좀 넉넉하게 나눠주면 일손도 덜고 좋을 텐데, 1주일 단위로 나눠서 조금씩 배급을 했네요? 더구나 신안의 섬 지역에서 왕래하는 부모들이 상당수여서, 한 번 나오려면 힘들 텐데….

-노우! 한꺼번에 주면 안 됩니다. 그걸 시장에 내다 팔아서 술을 마셔 버리거든요.

아동 결핵환자들의 가정이 대개 이러하였다. 인계인수 절차를 마치자 당시 78세였던 레케보 원장은 본국으로 떠났고 30대 후반의 송선대 씨가 새로이 원장을 맡았는데, 국가에서 지원한 예산이 워낙 빠듯했으므로 병원 내에서 학령기의 아동 환자들을 가르치는 일은 포기해야 했다.

물론 환자 부모들에게 제공하던 구호양곡도 끊겼다. 그런 어려움 외에도 그 병원에는, 원장은 물론이고 나머지 의사들이 거처할만한 방이 한 칸도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 노르웨이 원장은 평소에 잠을 어디서 잤느냐고 물어보니까, 방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병실이 비면 그쪽에다 간이침대를 놓고 잤다는 거예요. 그럼 세 명의 의사들은 어디서 자느냐고 물었더니, 주방 아줌마들이 쓰는 쪽방이 하나 있는데 그분들이 퇴근 하고 나면 밤 시간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가 아침에 아줌마들 출근하기 전에 후다닥 일어나서 방을 비워준다는 겁니다. 그들 모두가 다른 병원에 가지 않고, 아동 결핵환자의 진료를 자원한 의사들이었어요.”

그 의사들에 비하면 원장인 송선대 씨는 그래도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어서, 시내에 있는 여인숙의 주인과 장기 투숙계약을 맺었다.

“목포의 그 여인숙은 참 재밌었어요. 밤마다 잠 잘 방이 바뀌어요. 퇴근해서 여인숙에 도착하면 여주인이 내 옷가방을 끌어다 주면서 오늘은 207호에서 주무세요, 하는 식으로….”

그 시절, 결핵이라는 그 재앙 같은 전염병으로부터 그마나 사람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자발적으로 환자 곁으로 달려왔던 ‘썩 괜찮은 의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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