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농경사회 사람들] 그 여자 멸치 사냥법②

  • 입력 2018.08.19 10:55
  • 기자명 이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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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기 시인

땀봉댁은 닷새마다 읍내 시장마당으로 나갔다. 억수장마나 폭설에 갇히는 날이 아니라면 단 한 장도 빠지는 때가 없었다. 품팔이 일이 뜸한 봄날이면 호미로 캔 나물부터 시작해 뜯어야 할 들나물이 널려있었고, 녹음이 짙어지면서 꺾어야 할 산나물 또한 지천이었다. 들일이 바빠지는 여름이 다가오면 완두콩에 애호박에 가지며 오이를 시작으로 감자와 옥수수, 호박잎, 고구마순 등속은 아침저녁으로만 잠깐씩 손을 놀려도 닷새마다 이고 갈 장보따리를 묵직하게 만들어주었다. 봄여름이 그랬으니 가을 장보따리야 더 풍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장거리들을 만들어주는 땅은 작은 오라비가 배려해준 두 마지기 밭이 있어 가능했다.

그렇게 장만한 것들을 이고 지고 가서 장마당 난전에 펼쳐놓고 쭈그리고 앉아 팔았다. 물건은 대부분 단숨에 팔아치웠지만 어떤 날은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하염없이 앉아있기도 했다. 팔리지 않아 도로 집으로 가지고 가야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절대 헐값 ‘떨이’는 하지 않았다. 가끔 나잇살이나 먹은 여자들이 지나가다 나물줄기를 손톱으로 꾹꾹 눌러보고는 그냥 가는 바람에 생채기가 나는 일이 잦아지자 어느 때부턴가는 나물 값을 내놓기 전까지 손도 못 대게 으르렁거려 장판에 소문이 날 정도였지만 그러나 물건 하나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옹골차고 싱싱했다.

장마당 난전 장사가 끝나면 땀봉댁은 빈손을 두어 번 탁탁 털고는 몸빼바지를 끌어올려 흘러내리지 않게 삼베 끈으로 질끈 묶은 뒤 휘적휘적 걸어서 건어물전 순례길에 나선다. 땀봉댁이 장터에 나왔다면 건어물가게 순례는 빠지지 않고 반드시 거쳐 가야하는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곳에 가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하는 데가 한곳이 있었다. 영천장터 안에는 토막 낸 상어고기를 파는 어물전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는데 장날이면 사람들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땀봉댁은 인파에 밀려 어물전으로 간다.

영천에는 상어고기로 산적을 만들어 제상에 올리는 풍습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상어고기 산적을 ‘돔배기’라고 한다. 귀상어 고기를 양제기(양지)라고 하며 가장 비싸게 팔려 돔배기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그 다음으로 ‘모노’라고 불리는 청상아리와 참상어가 있고 ‘악상어’인 준달이와 풀치 등이 팔리고 있다. 소고기 산적을 제상에 올리는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상어고기를 상놈고기라고 하며 그걸 먹는 사람들조차 낮추어보고 빈정댄다. 어떻게 토막 낸 물고기를 제사상에 올리느냐는 것이다.

땀봉댁은 어물전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먼 일가 조카뻘 되는 사람 가게에 들러 상어 꼬리 맨 끝 쪽의 볼품없이 작은 고깃덩어리 하나를 긴 흥정 끝에 사놓고는 주문이 더 많다. 얇게 썰고 소금은 많이 뿌려라, 썰다가 처진 부스러기 고기 모아둔 것도 좀 달라, 어딘가에 처박아놓은 껍데기는 좀 없느냐면서 칼질하고 소금 간하느라 정신없는 가게주인을 귀찮게 한다. 알아서 해놓을 테니 어서 건어물전 순례나 하고 오라는 듯이 가게주인이 돔배기 간을 하다말고 소금 묻은 손으로 그쪽을 가리켰다. 땀봉댁이 그렇게 요란한 주문을 하지 않아도 가게주인은 그녀가 올 때마다 부스러기 고기와 껍데기를 싫어하는 손님들이 남겨두고 간 것들을 푸짐하게 담아주고는 했다. 상어 껍데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삶아낸 것을 두투머리라고 하는데 여름에 마시는 막걸리 안주로는 일품이다. 그러나 땀봉댁에게는 그것이 썩 좋은 밥반찬이 되는 것이다.

아주 어쩌다가 집에서 밥을 먹는 땀봉댁 반찬은 돔배기가 거의 대부분이다. 어물전에서 소금을 잔뜩 뿌린 돔배기를 집에 가지고와 소금단지 안에 오래 묻어두면 검은색으로 변하는데 그 맛이 짜다 못해 소태처럼 쓰다. 그녀는 손가락 한마디만한 그 짜디짠 돔배기 한 동가리로 밥 한 그릇을 비운다. 왼손 엄지와 검지에 묻은 기름기까지 다 핥아먹은 뒤 몸빼바지에 쓱쓱 손가락을 닦고는 밥그릇에 물을 왈칵 부어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다가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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