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목소리로 확인한 철원 시설원예 현주소

스마트팜, 기업형 농가만 생존 전망 … “관이 나서 소농·영세농 대책 찾아야”

  • 입력 2018.08.18 14:09
  • 기자명 정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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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정경숙 기자]

폭염과 가뭄으로 전국 대부분의 작황이 좋지 않은 지금, 철원의 시설원예농가도 시름하고 있다. 작년 대비 생산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농가도 있고, 많이 잡아봐야 60~70%라고들 말한다.

이와 반대로 예년과 다름없는 생산량을 유지한 농가가 있다. 바로 스마트팜 시설을 갖춘 ‘늘싱팜’이다. 신현찬 늘싱팜 대표 등을 만나 철원 시설원예의 현주소를 확인했다.

스마트팜 3년째라는 신 대표는 “네덜란드의 스마트팜 체계를 보고 자신과 자식들이 살아남을 길이라고 판단해 네덜란드를 오가며 교육을 받았다”며 “내수는 이미 포화상태라 수출을 염두에 두고 투자를 했다”고 한다.

늘싱팜은 7,700평 땅에 스마트팜 체계를 갖춘 11동의 시설을 갖췄고 토마토 생산량은 200톤, 파프리카는 150톤이다.

신 대표는 “미세먼지, 토양오염, 이상기후 등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시스템이다.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시설 자체를 스마트팜 체계에 맞게 설계해서 만든 신 대표와는 달리, 기존 시설을 개선해 스마트팜 시스템을 갖춘 농가 A씨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A씨는 “기존 시설에 투자하는 건 효율이 떨어진다. 봄, 가을로 한 달씩만 시스템을 돌리고, 더운 여름에는 측면 비닐을 열어놓는다. 기존 양액재배시스템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며 “고가 시설에, 작물 가격은 보장되지 않으니 수익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수입산 시스템을 쓰는 것도 문제다. 철원에선 10여 농가가 스마트팜 체계를 갖췄는데, 영어나 기계에 능숙하지 못하니 제대로 활용하는 곳이 두, 세 곳 정도인 걸로 알고 있다. 안전하고 믿을만한 국산 시스템이 개발돼야 한다”고 첨언했다.

기존 양액재배시설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는 농가 B씨는 “스마트팜이 대세가 될 것 같긴 하다. 해마다 시설 투자를 하는데, 지금 수익으로는 투자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 한숨밖에 안 나온다. 이왕 시작한 것인데 멈출 수 없으니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씨와 B씨가 내린 결론은 같았다. 자본력 있는 농가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A씨는 특히 “스마트팜 시설지원이 진정 농민을 위한 것인가 되짚어봐야 한다. 기업형 농가만 살아남을 거란 우려가 든다. 소농과 영세농은 죽는다”고 전망했다.

신 대표 역시 “철원의 파프리카 재배면적이 대략 45만평, 토마토가 40만평으로 포화상태다. 구조조정 시기가 올 것이고 도태되는 농가가 생긴다. 반면 자본력과 선진기술력, 판매망을 갖춘 농가는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 대표의 판매망은 안정적이다. 토마토 생산량의 10%와 파프리카 30%는 일본으로 수출하고, 나머지는 유통업체와 시장에 풀린다. 결국 내수시장에서 다른 농가들은 신 대표와 경쟁해야 한다.

함께 살아갈 방법은 없는지 물었다. 신 대표는 “수출에 맞는 품종 재배는 내가 찾아낸 틈새시장이다. 소농의 생존을 위해서 관에서 틈새시장을 찾아내야 한다. 작목을 다양하게 개발해서 농가별로 적정하게 나눠주고, 기술과 시설을 지원하고, 작목별로 조직화해서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고 답했다.

B씨는 “관이 농민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힘 있는 쪽으로 지원이 쏠리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힘없는 개인이라도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사업성이 있는지 검토해봐야 하는데, 전혀 듣지 않는다. 그러니 작목이 다양해질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A씨는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판로개척을 해야 한다. 지금 유통구조는 생산자 등골을 빼먹고 소비자에겐 필요 이상의 값을 지불하게 한다. 가격이라도 보장받아서 농사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철원의 시설원예농가들은 몇 번의 구조조정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떨어져나간 농가들이 부지기수다. 경매로 나온 시설들, 주인을 찾지 못해 흉물이 되어가는 시설도 있다. 살아남은 농가들은 규모를 키우고, 새로운 농가들이 후발주자로 끼어든다. 생산만 독려하고 유통과 판매는 보장하지 않는 관의 지도 아래, 작목은 단순해지고 경쟁은 치열해진다. 대농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한 농부가 던진 한 마디가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 가족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농사를 짓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한다. 그러면 과잉과 포화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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