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특화작물 유도하곤 나 몰라라?

  • 입력 2018.08.19 21:35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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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고창 복분자, 단양 아로니아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농가에게 지역별 특화작물 재배 장려에 앞서 안정적인 판로 확보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4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비탈진 밭에서 한 농민이 아로니아를 수확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고창 복분자, 단양 아로니아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농가에게 지역별 특화작물 재배 장려에 앞서 안정적인 판로 확보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4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비탈진 밭에서 한 농민이 아로니아를 수확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최근 지역별 특화작물이 철마다 쏟아진다.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한데, 지자체에서 농가 소득작목 또는 지역 특화작물로 심으라고 장려하며 지원하기 때문이다.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지자체가 나서 특화작물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재배를 결심했다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묘목 지원과 함께 전량 수매를 약속했던 지자체는 군수가 바뀌며 수매 물량을 대폭 줄였고 해당 작물을 담당하던 사업 담당자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이전 단체장의 치적을 이유로 잘 추진되던 사업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특화작물 육성에 나선 대부분의 지자체에선 수매 후 농협을 통해 판매하거나 가공업체로 물량을 넘기는 등의 수순을 거친다. 물론 국고를 보조 받아 지은 저온저장고에 물량을 저장하기도 한다.

대부분 안정적인 판로나 가공 방안 등을 마련하지 않은 채 작물 식재만을 유도하고 장려하기 때문에 재고가 쌓이고 이는 해당 작물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재배를 포기한 농가들이 발생하고 생산량이 줄면 다시 가격이 오르고 다른 지역에선 그 작물을 소득작물로 육성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실제 복분자 생산 과잉으로 가격하락을 경험한 고창군에선 군수가 바뀌며 한 때 아로니아, 블루베리 등의 식재를 장려하며 나서기도 했다. 머지않아 가격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작물들이 속을 썩이자 폐업 장려금을 지급하며 사업을 정리하는 데 또 다시 예산을 소요했다. 하지만 한 때 농촌에 열풍을 일으킨 아로니아, 블루베리 등은 여전히 다른 지역의 농가 소득작물로 각광받으며 재배되고 있다. 대량으로 수입되는 폴란드산 아로니아, 미국산 블루베리 그리고 특화작물로 육성되는 다른 지자체산과 경합하면서 말이다.

고창군에서 복분자를 재배하는 한 농민은 “지자체에 생산 지원부터 판로 확보까지 전부 다 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특정 작물을 재배한다고 지원해주는 것도 어떻게 보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다. 키울 작물을 선택하고 재배하는 건 우리 농민 몫이기 때문에 그냥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만 갖춰지면 된다”라며 “농가 입장에선 날뛰는 가격에 조금이라도 더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을 선택하려 한다. 그래서 지자체에서 육성하는 작물에 몰리게 되고 실패하게 되는 거다. 어떤 걸 재배하던 기본적인 소득만 보장되면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특화작물을 육성할 필요도, 대규모 클러스터를 조성할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조금이라도 나은 소득을 얻고자 하는 농민들에게 선행돼야 할 건 생산 기반을 유지할 기본소득 보장이다. 지역 농업의 경쟁력과 농가소득 향상 등을 명분으로 한 지자체 특화작물 육성 사업이 보다 훌륭하게 추진되고 안정되게 지속되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치적 쌓기 용으로 둔갑해 악순환을 부추긴다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돼 버린다.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에겐 임기와 함께 끝나버릴 순간의 백일몽이 아닌 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소득 보장 등의 정책 사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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