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이 여름, 사람이 먼저인가? 물가가 먼저인가?

  • 입력 2018.08.19 11:58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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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도대체가 궁금했습니다. 왜 그토록 말리는데, 아니 그토록 뜨거운 햇살아래서 일을 하다가 참변을 당할까요? 행정에서도 마을방송으로 하루 세 번씩 고하는데 말이지요. ‘군민여러분, 오늘 우리지역은 폭염특보가 내려졌으므로 낮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바깥활동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압니다. 알고말고요. 이 날씨에 바깥에서 일을 했다가는 아차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왜 비슷한 사고가 끊이지 않을까요?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안전불감증이라구요? 노인이 되면 말초신경이 둔해져서 더위를 잘 못 느낀다구요? 정말 그럴까요? 사실은 다들 이 불볕더위를 겁냅니다. 그래서 매번 피합니다. 그런데도 깜빡 위험수위를 놓쳐버릴 때가 있습니다. 언제?

며칠 전 시어머니와 함께 새벽부터 고추를 땄습니다. 다행히 지하수가 고추밭 옆에 있어서 그야말로 남들이 부럽게도 적절하게 물을 댈 수가 있었고, 그것들이 제법 붉게 익었습니다. 그렇잖아도 남들은 벌써 몇 근씩 따서 말렸다는 이야기에 어머니께서도 그 고추를 얼른 따고 싶어 하셨던 것이지요.

첫물 두물 고추의 탐스러움이란 아는 사람만 아는 보람입니다. 어머니께서는 반으로 접히는 핸드폰마냥 꺾인 허리를 하고서도 첫새벽부터 눈 주위로 앵앵거리는 깔따구며 새벽에도 움직이기만 하면 땀을 바가지로 흘리는 더위에도 아랑곳 않으시고 줄곧 고추를 따셨습니다.

그렇게 새벽부터 시작한 일이 아침햇살이 온 골짝에 퍼지도록 이어졌으나 다른 집들의 배가 되는 고추밭은 하루아침에 다 딸 수 있는 양이 아니었습니다. 해서 늦은 아침밥을 먹으러 집으로 가자고 말씀드리니 저기 저 고랑까지 다 따고 가실 것이라 하십니다. 어머니의 계산으로 치자면 오늘 해야 할 일의 목표량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힘든 것쯤이야 농사일을 시작한 당초부터 그랬던 것이고 그 힘듦을 견디고 견디어 여기까지 왔으니 아침밥은 좀 늦게 먹어도 된다고 우기시는 것입니다.

비로소 납득이 갔습니다. 한 발 더, 한 고랑만 더, 조금만 더 해놓으면 내일 수월해질 테고 그래서 더 여유가 생길 것이라며 집안살림을 일궈 오고 이 땅의 먹거리를 지켜온 것이지요. 농정당국과 관료들의 탁월한 농정에 힘입어 이 나라의 농업이 지켜져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애오라지 때맞추어 저 한 고랑 더, 한 뙈기 논밭을 더 일궈온 그 힘이 이 나라 식량주권의 근원인 것이지요. 그러니 이 더위조차 피하지 않고 일을 하다가 정말이지 살인적인 폭염에 농민들이 논밭에서 픽픽 쓰러져 가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이 땡볕에 농산물 수급이 걱정이고 가격이 그렇게 걱정이던가요? 수급문제만을 이야기할 리가 없다고, 필경 이 무더위에 일하는 농민들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이더군요. 귀를 의심했습니다. 사람이 먼저라면서요? 달리던 외제승용차가 불에 탄 숫자는 매일매일 정확히 계산해 내면서 불볕더위에 일하다 쓰러진 농민들도 그렇게 민감하게 집계하고 있나요? 하루 세 번 꼭꼭 울려대는 마을방송으로 퉁 치는 것은 아닙니까? 이 불볕더위에 일하는 농민들은 정녕 보이지 않는단 말씀인가요? 나랏님 말씀에 농민들은 내리쬐는 햇살보다 더 따갑게 데이고 억장이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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