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댐 수해 1년 … 돌아오지 않는 인삼밭

피해농민들 폭염 속에 댐 앞 점거 농성
“명백한 인재임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 입력 2018.08.12 11:21
  • 수정 2018.08.12 17:02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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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달 16일 재해 1주기 선포식을 열고 농성에 돌입한 충북 괴산군 수해 농민과 주민들이 괴산댐관리사무소 앞을 상여로 막고 고추를 말리고 있다.
지난달 16일 재해 1주기 선포식을 열고 농성에 돌입한 충북 괴산군 수해 농민과 주민들이 괴산댐관리사무소 앞을 상여로 막고 고추를 말리고 있다.

 

지난해 여름 괴산댐 방류로 인해 수해를 당한 농민들이 이 폭염 속에 생명을 건 농성을 하고 있다. 농민들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댐 관리 부실로 일어난 참사라며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수원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16일, 충북 괴산군에는 당시 오후 3시까지 172mm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그날 괴산댐은 월류 기준인 137m 65cm에 겨우 5cm 모자란 137m 60cm까지 물이 차올라 청천면 등 상류지역은 방류를 시작하기도 전에 수해가 시작됐다. 이윽고 월류를 막기 위한 급격한 방류 후 하류 지역 칠성면 등 4개면 일대 역시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 대부분은 하천에 인접한 인삼재배농가들이었고,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들도 소수 있었다.

대책위원회를 꾸린 피해 주민들은 지난 16일 수해 1주기를 맞아 댐 관리사무소 앞에서 선포식을 열고 농성에 들어갔다. 천막을 치고 상여를 제작해 사무소 앞에 세운 주민들은 한수원 측이 수위조절 실패로 화를 부른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보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한편 책임있는 설명을 요구했다. 한수원은 폭염에도 이를 보름이나 지켜보고 나서야 ‘대화를 하자’며 댐 운영에 관한 설명회를 열겠다고 제안했다. 농성에 참여하던 주민이 온열질환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있고 나서였다. 대책위 측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농성은 잠시 중단됐다.

이름은 ‘설명회’였지만 실제론 비공개 면담에 가까웠다. 대표자 단 5명만이 관리사무소에 입장할 수 있었고, 주민들 사이에선 “이게 무슨 설명회냐”며 한수원 측의 태도에 불만을 쏟아냈다. 관리사무소 측은 기자들의 출입 역시 불허했다. 괴산군의회 의원들만이 두 시간 가량 ‘면담’을 참관할 수 있었다. 장옥자 군의원은 “서로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혀를 찼다.

‘천재’를 주장하는 한수원 측과 ‘인재’를 주장하는 대책위 사이의 평행선은 결국 좁혀지지 못했다.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설명회는 의원들이 떠나고 나서도 계속돼 총 네 시간 가량이나 진행됐으나 합의점을 찾지는 못했다. 중간 결과를 전해들은 대책위는 접어뒀던 천막을 다시 펴고, 관리사무소 입구를 상여로 막았다. 이어 또다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대책위는 수해를 입은 38가구의 재산피해 규모를 200여억원으로 산정하고, 1차적으로 한수원을 상대로 2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다. 오는 9월 12일 4차 변론 기일이 예정돼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계수단을 잃은 농민들은 길고 지루한 법정싸움의 결과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재산피해를 입은 38세대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삼농가들은 대부분 임차농으로, 재배에 수년이 소요되는 인삼의 특성 상 지난해 농사를 망친 뒤 대부분 임차를 중단하고 말았다. 한 농민은 “아무 수입도 없이 농사를 망쳤는데 다시 도지를 낼 수 있겠냐”고 잘라 말했다. 유경수 대책위원장은 “저쪽은 가진 게 많아 재판을 진행해도 아무 문제없지만 농민들은 망친 농사에 들인 영농자금을 또 다시 빚까지 내 갚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괴산댐의 홍수대비능력 부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돼 온 사안이다. 한국시설관리공단은 지난 2003년 괴산댐을 진단하며 작성한 보고서에서 “본댐은 유역면적에 비해 댐의 규모가 너무 작아 여수로 방류능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로서 현 상태에서 여수로 증설 또는 별도의 비상 여수로를 설치하는 등의 부분적인 증설대책으로는 홍수조절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댐의 안정과 홍수조절능력이 확보되도록 댐을 전면개축 또는 신설하는 방법 등의 항구적인 근본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덕흠 의원은 이 사고가 한수원이 댐의 수위를 홍수기 제한수위보다 더 높게 유지해 벌어진 인재라며 수위를 초과해 운영한 실태를 공개했다. 대책위는 국회의 협조를 구해 올해 국정감사에서 이 사고를 다시 한 번 고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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