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가축의 고통과 정치적 각성

  • 입력 2018.08.11 21:23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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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교수
우희종 서울대 교수

동남아 여행했을 때나 느껴지던 습도 높은 고온 날씨가 국내에서도 전혀 새롭지 않은 나날이다. 여름의 상징 같은 모기마저 날이 더워 숫자가 감소했다니 결코 예사롭지 않다. 특정 기후 상황에서의 유별난 폭염이라고 믿지만, 전 지구 차원의 기상 온난화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는 이산화탄소 배출 등 주요 원인을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기록적 폭염상황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소식마저 들려온다. 사람이 이럴 진데 가축 상황도 충분히 짐작된다. 기실 농촌 현장을 생태적 환경이나 아름다운 노동 현장으로 말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이미 이곳저곳에서 집단 폐사 소식이 들리고, 바다 양식장에서의 피해도 크다. 키우던 동물을 폭염에 잃은 농장주의 경제적 고통과 심리적 힘듦에 더해서 이 폭염에선 목숨을 잃는 동물 자체가 겪을 고통도 있다.

최근 국회에서 정의당 이정미,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표창원, 송갑석 의원실, 그리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이끄는 포럼 지구와사람 등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 ‘가축 살처분 실태와 쟁점 진단 - 생명을, 묻다’에서 농장동물 복지에 대한 정책 토론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살처분과 같은 방역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농장동물 복지 정책의 기반을 이뤄야 할 것은 생명체가 느끼는 고통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안전한 먹거리 확보 및 경제적 측면에서의 적절한 경계선을 찾는 일이다.

일부 동물복지 활동가들은 반려동물 기준에 근거한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동물 복지에 적용시키려 하지만, 인간사회를 포함한 생태계 내의 다양한 동물 지위에 따라 여러 동물 복지 개념과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음도 토론회에서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처럼 폭염이 지속되는 요즘엔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서 농장동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단지 얼마짜리 상품 내지 뉴스 속에서 숨진 동물 숫자가 아닌, 생명체로서 이들을 인식하고 고려하는 성숙한 사회에서 오히려 농업과 축산인들이 건강한 사회 근간을 떠맡고 있음을 인식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문화가 국가의 정책적 무관심과 고령화 속에 땀 흘리며 고생하는 농촌 현장에서 원론이나 관념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농민 스스로가 동물복지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하고 동시에 정치적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눈에 뜨이는 방역만이 아니라 농장 동물의 사육, 이송 및 도축 과정에 동물 복지 개념 적용이 어떠한지 유럽 등의 사례로부터 철저히 공부한 후, 이를 정부가 구체적 정책으로 실현시키고 그런 체제 변화에 따른 과도기적 비용 발생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직 농축산 현장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여 지속적인 정책 입안과 법안 개선 노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의식화가 필수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생명을 일차적으로 다루는 삶의 현장에서는 늘 다양한 차원의 고통과 경제적 욕망이 교차한다. 비록 현재는 후자가 중심일 수밖에 없지만 무더운 폭염을 견뎌내는 현장 노력이 산업시대의 흐름 속에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고 장차 우리사회를 건강히 지켜줄 밑거름이 되려면 그 노력의 방향을 일부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한 농축산 산업구조 개선 및 미래 식량전쟁에 대비한 장기적 접근을 특정정권에서 마무리할 것으로 조급히 기대하거나 장관 한, 두 명의 노력으로 이뤄내려 할 것은 없다. 오히려 시대가 변해도 사회 변화는 현장에서 땀 흘리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깨어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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