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장관에게 바란다

  • 입력 2018.08.12 13:38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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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낮의 기온이 35도를 육박했다. 열을 추적, 탐지해 폭염 정보를 한 눈에 보여주는 열화상카메라 속 밭의 온도는 50도를 넘나들었다. 잠시 서 있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카메라 속 밭은 온도가 높을수록 붉게, 낮을수록 푸르게 표시됐다. 온통 붉게 표시된 밭 사이에 한 여성농민이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그녀는 밭을 뒤덮은 비닐을 걷어내고 있었다. 양파를 심은 밭이었다. 호미로 흙을 캐자 굵고 실한 양파가 줄줄이 나왔다. 검은 비닐 아래 수확을 포기한 양파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줄줄 흐르는 땀에 일의 진척은 더뎠다. 비닐을 걷을 때마다 일어나는 먼지 속에서 그녀는 자꾸 한숨을 내쉬었다. 실상은 이랬다.

올해 일흔여섯인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 한 해 농사를 쉬어갈 요량으로 밭을 한 농민에게 임대했다. 밭을 빌린 농민은 양파를 심었고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양파 가격이 폭락했다. 20kg 한 망에 1만원이 채 안 되자 임차인은 품삯도 나오지 않는다며 수확을 포기했다. 수천 평 밭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임차인은 빈손으로 떠났다. 일손을 불러 밭을 정리하기에는 없는 수입에 인건비 부담이 컸다. 결국 그녀 홀로 비닐 제거에 나선 참이었다.

인지상정 상 밭 정리만이라도 해주지 않은 임차인이 못내 괘씸했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고생한 보람도 없이 값이 없는데 무슨 수로 하고 싶겠냐며 나자빠진 양파만 보면 그녀조차도 속이 쓰리다고 말했다.

최근 강원도 화천과 홍천에선 애호박과 오이 가격이 생산비 수준에도 못 미치자 농민들이 산지폐기에 나섰다. 하락할 대로 하락한 농산물값을 올려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수확을 포기하거나 산지에서 폐기하거나 농산물 가격파동에 대처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안쓰러운 건 매년 반복되는 상황임에도 이렇다 할 가격대책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이쯤 되면 농산물 가격문제는 ‘인재’가 아닌가.

지난 9일 5개월여 동안 자리가 비어있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다른 부처 장관이었더라면 그 오랜 기간 방치할 수 있었을까 하는 현 정부의 농정 철학을 향한 원망 섞인 한탄은 뒤로 하고 신임 장관 앞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무수히 많은 현안들이 놓여있다. 그 중 농산물 가격문제는 농민의 삶과 직결된, 시급을 다투는 일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신임 장관의 취임 첫 일성이 농산물 가격문제 해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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