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폭염에 가격에 야생동물에

  • 입력 2018.08.12 13:07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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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점차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더워지지만 조금만 더 하면 하던 일은 끝맺음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밭골에서 낫질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남편의 전화번호가 뜬다. 안 받아도 왜 전화했는지 알겠다. “날이 뜨거우니 집으로 얼른 들어오라”는 말일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며칠 전 밭에 물을 대려고 애 쓰시던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온열병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러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고 며칠을 못 봐도 전화 한 번 하지 않던 부부간에도 각자의 일터에서 무사한지를 확인해야 할 정도가 요즘 농민들의 삶이다. 농민들이 생명의 위협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전, 5년 전에 귀농했던 이웃 한 명이 서울로 직장을 잡아 떠났다. 농사지으려고 땅도 사고, 집도 사고 농기계 트럭 등도 장만해서 호기롭게 농사를 시작했던 귀농인이었다. 호박, 콩, 생강 등 이것저것 밭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으로 살고 싶어 하던 귀농인이었다. 우리 마을 작목반 총무도 맡아서 회원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성실했던 귀농인이었다.

그러나 농사지어서 팔아도 가격이 낮으니 돈을 벌기는커녕 해마다 가지고 온 돈을 까먹더니 기어이 전에 다니던 직장으로 다시 돈을 벌러 갔다. 부인과 아이들은 아직 이곳에 살기로 했으니 다시 농부로 올 것이라 믿지만 마음이 아팠다. 돈이 없어서 직장 생활이라도 해야겠다는 그를 가라고 할 수도, 말릴 수도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아예 짓지 않는 농사가 몇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콩 농사이다. 메주를 쑤기 위해서는 흰콩이 꼭 필요하고, 콩자반을 좋아하는 식구들이 있으니 검은콩 농사도 짓고 싶지만 고라니와 새 때문에 지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콩을 밭에 갈았으나 새들이 콩을 다 주워 먹어버리니 할 수 없이 모종을 키워 본 밭으로 내었다. 본 밭으로 간 모종은 또 다시 고라니의 밥으로. 산간동네이다 보니 멧돼지며 고라니, 두더지, 새 등 야생동물 피해가 심각하다.

콩 뿐 아니라 땅콩, 옥수수 등 닥치는 대로 먹어버리고 벼 이삭이 달리기 시작하면 멧돼지들이 논으로 몰려 들어가 벼를 밟아 버린다. 먹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싸움 속에서 지키려는 농부는 전에 보다 힘이 배도 더 든다.

이상기후는 사람만 힘들게 할 뿐 아니라 농작물에도 큰 피해를 준다. 지금의 폭염과 가뭄으로 고추며 생강, 콩, 들깨 등 밭작물이 겨우겨우 숨만 붙어 있다. 우리 동네 생강은 유례없는 병충해로 누렇게 대가 썩어 들어가 예년농사의 30% 수확도 기대하지 못 할 정도이다.

과일은 과일대로 굵어지지도 않고 불에 데인 것처럼 화상을 입어 상품가치가 없고 나무는 마르고 있다. 가축과 어류는 더위를 이기지 못해 폐사하고 있다.

아, 갈수록 농사짓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이상기후와 농산물 가격과 야생동물의 피해는 다 농민만이 감당해야 할 짐인가? 국가라면? 정부라면? 농민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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