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농정, 다시 세울 수 있을까

  • 입력 2018.08.05 14:09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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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16년 겨울, 농민들은 역사의 한복판에 섰다. 탄핵의 단초가 된 건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였지만, 박근혜정권의 도덕성과 정당성은 세월호와 백남기에서부터 이미 그 썩은 뿌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농민들은 촛불보다 한 발 앞서 박근혜정권을 겨냥했고, 촛불과 함께 가장 열정적으로 광화문을 누볐다. 그 해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혁명의 발판에는 분명 농민들의 피와 땀이 선연하게 묻어 있었다.

누구보다 애썼기에 기쁨도 컸던 농민들이었다. 승리의 그 날, 전주성을 함락한 동학농민군처럼, 농민들은 트랙터에 올라 깃발을 흔들며 해방춤을 만끽했다. 이렇게 새 세상이 오는구나, 수고했다, 축하한다며 저마다 모여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내 냉정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대통령이 바뀌고 새 정부가 들어서도 농업이란 산업은 여전히 비주류였다. 대통령이 농업의 가치를 바로보지 못하는 이상 농촌 현실은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었다.

정부가 다른 분야에서 ‘열일’을 하는 동안 농산물 값은 어김없이 폭락하고 수입 농산물은 속절없이 늘어났다. 그나마 만족스럽지 못했던 농정공약도 이행이 더딘데다 농업예산은 오히려 4.1%나 삭감됐다.

그 와중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도지사 출마를 위해 돌연 장관직을 사퇴했다. 가뜩이나 진척이 없던 농정개혁은 사실상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그 상태로 대책 없이 146일이 흘렀다. 이것이 촛불혁명 이후 지금까지 농민들이 겪어온 과정이다.

지난달 26일 청와대가 새 농식품부 장관을 내정했다. ‘농도’ 전남의 유일한 여당 국회의원이자 국회 농해수위 간사를 지낸 이개호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현 시점에서 농식품부 장관으로서 적임자인가에 대해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지만, 긴 공백기간 끝에 마침내 장관 인선이 이뤄졌다는 건 어쨌든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는 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이 내정자의 임명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 내정자가 장관직에 연착륙하든, 그렇지 못하고 새로운 인선이 진행되든 현재 농정은 매우 속도감 있는 수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신임 장관은 농업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시급한 농정과제들에 관심과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혹 장관 직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기무사도 특별히 언급하고 경계했을 만큼 농민들은 촛불혁명의 가장 큰 주역 중 하나다. 그것은 그만큼 절실히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촛불 대통령을 향한 농민들의 손길은 1년하고도 3개월째 허공을 휘젓고 있다.

대통령이 못 한다면 장관이라도 그 손을 잡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1년여 동안 정체됐던 농정을 반성하고 농정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도록, <한국농정> 813호 커버스토리를 머지않아 임명될 신임 장관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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