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실종 … 농촌은 아직 ‘박근혜 시대’

대통령 무관심에 소외된 농민
농정 수뇌부 공백까지 장기화
기약없는 농정개혁 ‘벌써 1년’

  • 입력 2018.08.03 14:07
  • 수정 2018.08.03 16:0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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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엔 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공공기관에서부터 비정규직이 속속 자취를 감췄고 최저임금은 이전 정부에선 기대할 수 없었을 만큼 올라왔다. 부패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방송매체들이 균형을 잡기 시작했으며 매우 더디나마 철옹성 같았던 사법·군부·재벌 개혁도 시도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엎질러 놓은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으로 재포장돼 남북 관계에 전례 없는 진전이 이뤄졌다. 모든 성과에 양면성이 없을 순 없지만 여전히 60%를 웃도는 대통령 지지율을 보면 변화의 방향은 대체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독 농업·농촌만은 변화의 바람을 피해 가고 있다. 대통령의 관심 자체가 빈약하다 보니 개혁은커녕 후보시절 걸어 놓은 농정공약들을 이행하는 것조차 버거운 분위기다. 직불제 개편이나 친환경농업 확대에 대해선 전혀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았으며 품목별 생산자조직 결성은 정부의 방관 하에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했음에도 여성농민 문제엔 완전히 손을 놨고 GMO 표시제 확대 약속 또한 오간 데 없다. 대통령의 무관심을 보완해줄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조차 진전이 없다. 겨우 첫 발을 뗀 청년농업인 직불제와 학교 과일간식제를 제외하면 농정공약 이행은 몹시 저조하다.

전혀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11~12월 청와대는 ‘농산물 제값받기 프로젝트 TF’를 구성해 7회에 걸친 회의를 진행했다. 그동안 소비지 관점 일변도의 농업정책에 비해 확연히 농민중심적인 이름인데다 농업계 진보적 인사들이 다수 참여해 기대감을 높였다. 실제로 농산물 수급과 가격안정, 도매시장 제도개선 등에 대해 상당히 개혁적인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팀장을 맡았던 청와대 이재수 행정관이 지방선거 출마차 사퇴하면서 TF 논의결과는 거품처럼 사라졌다. 농식품부 수급조절매뉴얼이나 농진청 생산비조사에 소폭 개선이 이뤄졌지만 청와대 TF의 산물라 자랑하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지난 2월 충북도청에서 열린 농정개혁위원회 전국 순회 공청회 첫 일정에서 김영록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인사말을 마친 뒤 다른 일정을 이유로 공청회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취임 8개월여 만에 지방선거 출마를 이유로 장관직에서 사퇴해 농민들로부터 질타을 받은 바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월 충북도청에서 열린 농정개혁위원회 전국 순회 공청회 첫 일정에서 김영록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인사말을 마친 뒤 다른 일정을 이유로 공청회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취임 8개월여 만에 지방선거 출마를 이유로 장관직에서 사퇴해 농민들로부터 질타을 받은 바 있다. 한승호 기자

무책임하게 자리를 비운 건 이 행정관만이 아니다. 신정훈 청와대 농어업비서관과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까지 일거에 사퇴했고, 수뇌부를 잃은 농정은 이명박-박근혜 농정을 주관해 온 농식품부 관료들의 손에 오롯이 맡겨졌다. 변화의 적기를 놓친 농정은 관료들에 의해 관성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모처럼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그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청와대는 이 정책이 ‘혁신성장’ 슬로건에 부합한다고 보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거액의 예산이 대기업의 배를 불리게 하리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 관료들이 LG CNS 등 대기업과 접촉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은 농업에 관심이 없고 그 아래에서 농업을 챙겨야 할 책임자들의 눈은 일찌감치 지방선거를 향했다. 그 사이 농정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개혁은 당연히 요원하다. 촛불혁명을 통해 시나브로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지만, 적어도 농민들은 아직도 박근혜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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