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폭염의 농촌풍경
[농민칼럼] 폭염의 농촌풍경
  • 이영수(경북 영천)
  • 승인 2018.08.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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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경북 영천)
이영수(경북 영천)

휴대폰에서 유례없는 폭염으로 외부활동을 삼가라는 문자가 연일 울린다. 며칠 전 폭염경보 마을방송도 할 겸 복숭아 몇 개 들고 마을회관에 갔더니 70대의 젊은 할매들과 80대의 늙은 할매들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요지는 마을회관에 하나 있는 에어컨 바람이 늙은 할매들 방으로 안 들어오니 바람방향을 바꿔야 된다는 것이었다. 1년 내 마을회관에서 오순도순 정겹게 밥을 해 먹는 의좋은 할매들이었는데 폭염이 기어이 이간질을 시키고 말았다.

재난안전처의 문자대로 폭염으로 외부활동을 삼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농사꾼의 팔자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땡볕에도 신기하게도 풀은 어찌나 잘 자라는지 난로 같은 예초기를 등에 메고 풀을 베면 여기가 어딘지 나는 도대체 누군지 정신이 희미하다. 작렬하는 태양에 농작물도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다. 이슬 먹은 아침에만 잠시 생기가 돌 뿐 해지는 저녁까지 하루 종일 사지가 축 늘어져 산송장이나 다름없다.

특히 과일 농사꾼들에게 긴 폭염은 더더욱 힘든 시절이다. 곧 출하를 앞둔 과일이 폭염에 화상을 입기도 하고 과일을 제 크기대로 키우지도 못하고 제 맛도 못 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도 살아야 되는데 열매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에게 물이라도 제대로 먹이려고 수백 미터 하천에서부터 농수관을 연결하고 밤낮으로 양수기를 돌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 평소에는 막걸리 한 잔에 그리 의좋던 이웃도 서로 물을 대기 위해 경쟁자로 돌변한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달걀 정도는 그냥 익혀버릴 듯한 더위에 열매까지 익혀야 하는 복숭아나무나 복숭아 농사꾼인 나나 유난히 이번 여름이 잔인하다.

아스팔트에 계란프라이를 해 먹든 열사병으로 누가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든 이 더위가 농사꾼의 일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 폭염에도 산의 나무들을 보자면 아무 일 없다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사람이 키우는 나무에는 양질의 퇴비를 주고 작물보호제를 주고 날마다 전쟁처럼 물을 주는데도 비실비실거리기만 하는데, 흙 한 줌 물 한 방울 안 보이는 돌 틈에 뿌리 내린 낙락장송은 푸르름만 더해 간다.

귀농해 복숭아농사를 배우러 사비로 일본을 몇 번 다녀왔다. 일본 복숭아 장인이 복숭아 잎을 들고 설명하길 욕심내지 말고 산의 나무처럼 작고 진한 잎을 만들어야 된다고 했다. 더 많이 생산하겠다는 농사꾼의 욕심으로 준 퇴비와 각종 영양제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이 폭염도 사람의 탐욕이 낳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란 건 유치원생도 다 안다. 지금 이 순간도 생산과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산림을 훼손하고 농토를 없애면서 이상기후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앞뒤가 안 맞다. 농업이 농산물 생산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부디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 폭염에 오늘도 살아남은 고추, 들깨, 복숭아나무를 비롯한 모든 농원 식구들에게 감사한다.

오늘도 어둑어둑 해가 지니 전투태세를 갖추고 물을 퍼주러 가야겠다. 복숭아나무가 제 한 몸 버티기도 힘들다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너는 내가 퍼주는 물을 먹고 열매를 익히고 탐스런 결과물을 내게 바쳐야 한다. 이 폭염이 사람의 탐욕이 부른 재앙임을 잘 알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갚아야 할 농협 부채가 내게 더 큰 재앙이기 때문이다.

이 폭염을 이겨야 하는 복숭아나무와 나는 같은 운명이니 당연히 받아들이고 기쁘게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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