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집권 1년, 농정개혁 의지 실종에 ‘3농’ 위기 심화

  • 입력 2018.08.05 13:03
  • 수정 2018.08.05 19:53
  • 기자명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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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

문재인정부에 대해 범농업계(농어민, 소비자, 시민사회, 지식인 등 농어업·농어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가 날을 세우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거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국가 농정의 기본 틀부터 바꾸겠다’,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 ‘여성농업인의 위상을 제고하고 미래농업인력 육성’, ‘먹거리가 안전한, 건강한 대한민국’, ‘살맛나는 농어촌’, ‘지역일자리와 소득을 늘려 미래농업 대비’, ‘수산업을 살리고 어업인의 권익 제고’라는 7대 공약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서도 법농업계는 “오늘날의 농어업·농어촌의 위기를 초래한 경쟁과 효율만 강조하고 추구한 국가의 농정철학과 기조를 바꾸겠다”, “대통령이 농정을 직접 챙기기 위해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를 설치하여, 농어업인의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고 소비자와 국민이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에 커다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집권 후 1년여가 지나도록 어느 하나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게 없다. 범농업계는 문재인정부가 도대체 농어업과 농어촌에 관심이나 있느냐고 거칠게 따진다. 지난달 12일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농업’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개혁의 골든타임이라는 임기 초가 허무하게 흘러가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농업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농업무시를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농민을 비롯한 범농업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화를 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올 신년사로 보면 국민을 예순네 번 언급했다.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 청년, 재벌, 서민, 중소상인, 아동, 장기소액연체자, 노동자, 저소득층, 어르신, 여성, 위안부 할머니. 참으로 깨알같이 촘촘하게 챙겼다.

그런데 어디에도 농어민, 농어업, 농어촌은 없다. 범농업계는 농어민과 농어촌의 어려움을 호소하고자 여러 차례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지만, 국정운영 일정상 면담이 어렵다는 회신만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과 선임행정관이 모두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표를 내는 초유의 상태를 방관하고 장기간 후임조차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 농민들의 화를 돋웠다.

더욱이 내년도 정부예산은 6.8% 증액한 슈퍼예산을 편성했으나 농업예산은 4.1% 감액됐다. 농업예산 감액은 사상초유의 사태다. 농어민은 촛불정부의 국민이 아니냐고 따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농정공약 무시·농업예산 감액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농어민과 농어업에 대해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농어민을 무시할까. 농어민에 무관심한 게 문대통령 뿐일까. 작년 5월 19대 대선 후보 TV 토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분통을 터뜨린다. 모든 정당이 엇비슷한 농정공약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몇 차례의 TV 토론에도 문재인 후보 뿐 아니라 유력 후보 누구하나 ‘농’(農)자를 입에 올린 후보는 없었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말미에 간신히 몇 초 언급한 것에 대해서조차 범농업계는 감사할 정도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좀 더 솔직하고 노골적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5월 21일 이재명 후보 초청 정책 제안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후보는 “1,000만 경기도민 가운데 농민 수는 3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사는데 농민을 위한 특별한 정책을 하기 어렵다 … 농업예산을 더 늘릴 수 없기 때문에 돈 들이지 않고 농업과 농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정책을 어떻게 하겠다는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 400여명의 농민이 모인 자리에서 도지사 후보가 이렇게 용감하게 농민을 무시해도 도지사에 당선이 되는 게 현실이다.

농민을 무시하는 것은 어디 대통령과 경기도지사 뿐인가. 진보 언론이라 자칭하는 한겨레신문 월요판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져 신문 구독을 끊고 싶지만, 창간 주주로서 참고 있다. 한겨레신문 월요판의 ‘애니멀피플’란은 매주 신문의 한 면 혹은 두 면을 통으로 장식한다. 고양이와 개를 비롯한 동물 사랑 얘기다. 나도 집에 고양이와 개를 키우지만, 반려동물 1,000만 시대라고 하니 언론이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나 도가 지나치다.

언제 한겨레신문이 고단한 농민과 어려운 농업 농촌의 사연을 신문 한 면을 할애해 다룬 적이 있는가. 정기구독자로서 매일 아침 신문을 읽지만 수 삼년 내로 ‘농’자를 진지하게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농민보다 개나 고양이가 먼저다.

집권 1년이 지나도록 농업·농촌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문재인정부를 규탄하는 범농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후보 시절 약속한 농정공약 이행에 최소한의 의지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원망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농업적폐청산과 농정대개혁 촉구 범농업계 농민, 소비자단체 대표들이 지난 3월 말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정개혁에 나설 것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집권 1년이 지나도록 농업·농촌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문재인정부를 규탄하는 범농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후보 시절 약속한 농정공약 이행에 최소한의 의지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원망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농업적폐청산과 농정대개혁 촉구 범농업계 농민, 소비자단체 대표들이 지난 3월 말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정개혁에 나설 것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계·학계·언론에서 소외받는 ‘3농’

지난달 18일 문재인정부에게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이른바 323인 지식인 선언이 있었다. 나는 후배들로부터 발기인으로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초안을 검토했다. 깜짝 놀란 것은 성명서 어디에도 농업, 농민, 농촌 심지어 지역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 아니, 이른바 진보 지식인이라는 자들의 머릿속에 조차 ‘농’이 소외되고 무시되는 현실에 아연실색했다.

“어려운 농어민과 농어촌의 현실을 이렇게 외면할 수 있는가”라는 필자의 강력한 질타에 “농촌붕괴와 지방소멸 시대가 운위될 정도로 심각한 지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농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지역재생 방안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선언문 마지막에 추가했다. 그런데 정착 농업계 학자들이 이 선언에 거의 참여하지 않아 필자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대통령, 도지사, 언론, 심지어 진보 지식인과 농업계 학자조차 3농(농어업, 농어민, 농어촌)을 무시하는 게 슬프지만, 이를 개탄하고, 그들에게 아무리 읍소를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왜 우리의 3농은 오늘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비농업계는 우리의 위기를 외면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경제성장지상주의 때문이다.

경제성장지상주의는 세 가지 가설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경제는 무한히 성장한다, 둘째,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좋아질 것이다, 셋째, 따라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다른 가치들은 희생해도 좋다. 여기서 우리의 3농은 경제성장을 위한 희생물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이른바 고도경제성장 과정에서 3농의 지위가 급속히 저하되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농어업의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2% 이하, 취업자와 농가인구의 비중은 5% 수준으로 급락했다. 3농의 위상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초라하게 쪼그라들었다. 한때 모든 정치인이 선거에서 ‘나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를 노래하며 한 표를 호소하던 시절은 아득한 옛일이다.

경제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우리의 3농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의 비중과 기여를 우선시하는 경제성장지상주의를 우리 사회가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성장 중독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성장주의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여전히 성장을 통해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알코올의 폐해를 잘 알면서도 알코올을 끊지 못하고 매달리는 꼴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기대할 수 없고, 2~3% 내외의 성장에 만족해야 한다. 성장률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는데,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고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게 더 문제다. 이는 1997년말 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급속히 재벌중심 체제로 재편되고, 소득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성장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지금과 같은 경제구조에서는 성장할수록 오히려 문제가 악화할 뿐이다. 문재인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들고 나온 이유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은 경제성장률에 연연하면서 혁신성장을 내세워 다시 성장주의로 선회하고 있다.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중동과 보수 야당의 공격 앞에 무너지는 듯한 모습이다.

우리의 슬픈 3농의 현실은 남 탓만 할 수는 없다. 3농의 비중이 낮아지는 것은 경제발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 농민과 농업의 비중이 낮아졌다고 해서 모든 나라들이 3농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농업의 비중은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한결같이 3농에 두터운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스위스의 예를 보면, 농가인구는 1%, 농업생산의 비중은 0.6%에 지나지 않지만 농업예산은 그 열 배인 6%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농업·농촌이 지니는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설치 시급

청와대의 농어업비서관이 임명됐고, 그동안 공석이었던 농식품부 장관도 곧 임명되면 농정 라인은 일단 정비될 것이다. 그러나 ‘농업무시’라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그들의 운신 폭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정책을 총괄하는 인사와 농정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인사의 말인 즉, “농정개혁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프로그램도 갖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 내부에서 농정개혁에 대한 논의도 없고 합의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동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금융개혁 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방향성과 로드맵을 갖고 있다. 그런데 농정에 대해서는 그런 게 없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처지라 솔직하게 말한 것이다.

한 마디로 권력 엘리트들 사이에 농정은 관심사항이 아니고, 농정개혁에 대한 의지와 아이디어가 없다는 게다. 이런 현실이 대선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니 박근혜정부의 생산주의 농정이 문재인정부에서도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박 정부에서 농민들의 원성을 산 스마트팜 사업이 문 정부에서 스마트팜 밸리 사업이라는 1조원 사업으로 뻥튀기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듯이 경쟁과 효율을 앞세운 생산주의 농정으로는 농민도 불행하고 국민도 불행하다. 농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농정 패러다임을 생산주의 농정으로부터 국민행복에 기여하는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가 극대화되는 다기능 농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농식품부 장관이나 농어업비서관의 개인기로 돌파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수많은 농정 현안 대응에도 급급하고, 그들을 지원할 우군조차 없다.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를 국민과 정치권이 인정을 해야 한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이것이 개정 헌법 초안에 들어간 것은 나름 성과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될 게 없다.

‘농민이 불행하면 국민이 불행하고, 농촌이 불행하면 나라가 불행하다’는 사실을 국민들과 권력 엘리트들이 실질적으로 공감해야 한다. 범 정부부처, 농어민, 소비자,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 지식인 등이 참여하여, ‘농어업과 농어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며, 지속적 발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야 한다.

집행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 이외에 농어업, 농어촌, 먹거리의 장기 발전 계획과 실천 로드맵을 토론하고 작성하고, 그 집행과정을 지속적으로 심의 평가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공약한 농어업특별기구의 조속한 설치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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