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도련님, 아가씨 그리고 서방님!

  • 입력 2018.08.03 13:01
  • 수정 2018.08.03 13:42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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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아가씨, 도련님, 게다가 서방님이라니!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군가가 불러야할 호칭이다. 편하고 친해지기 위해선 그냥 이름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상대방의 기분 좋은 호응을 기대하지만 다들 화들짝 놀라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된다. 바로 이어 들리는 혀 차는 소리는 문지방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어디서 배워먹지 못한 인간이 집안 망신시키는 존재로 등극하는 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나는 어느 때 부터인가 다른 이에게 먼저 말을 거는 행위가 어려워졌고 꼭 필요한 경우엔 어떻게든 앞에서 얼쩡거려 눈을 마주치게 하여 말을 거는 이상한 인간이 돼버렸다.

그게 뭔 대수라고 말도 안하는 인간이 돼버렸고 별일도 아닌 것에 목숨 거는 ‘웃픈’ 사람이 돼버렸을까?

스물넷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여성농민이 되어 농사짓는 사람이 되고자 꿈꿀 때부터 함께 먹은 마음 중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여성들이, 내 딸들이 농촌에서 차별받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아마 내 삶이 그리되었음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결혼과 함께 가족으로 엮이고 ‘왜 나는 처가이고 남편은 시댁이지?’에서부터 내가 불러야할 호칭은 하나같이 극존칭, 남편이 부르는 호칭은 그냥 처남 처제, 처가와 시댁의 호칭이 뭐 이래,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건지 하는 생각들 별거 아닌 듯 하지만 호칭 속에 내포된 심한 성차를 느끼게 되었다.

가족이나 마을공동체 안에서 웬만하면 튀지 않고 늘 그 속에 녹아나야 한다는 신념은 호칭에서부터 무너져 내린다.

“별것도 아닌 일에 뭘 그리 예민하게 굴어?”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그냥 부르면 되지 그까짓 게 뭘 그리 대수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아마 나는 늘 까칠하고 예민쟁이로 보여 졌을지도 모른다. 혹은 싸가지가 없거나 배워먹지 못한 인간의 모습으로 비춰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혼 초 까칠함과 예민함은 점점 흐려지고 무뎌져 버렸고 그렇게 저렇게 자연에 순응하듯 농촌사회에 순응하며 30여년이 가까워지는 여성농민이 돼있다.

성년이 된 세 딸의 엄마이자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고 있는 나, 성평등을 주장하며 거리에 선 이십대 딸들을 보며 나는 무엇을 하였고 어떤 것을 바꾸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훌쩍 지나버린 한 세대만큼의 여성농민의 삶, 되돌아본다는 게 민망하지만 늘 새로움을 추구하고 소외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꿔 왔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겠지? 애써 토닥토닥 위안 삼아본다.

24살 호기심, 기대, 희망 가득 담고 시작한 여성농민의 삶 그 첫 설렘의 기억 찬찬히 되새겨봐야겠다. 작은 것부터 찬찬한 호흡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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