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농경사회 사람들] 그 여자 멸치 사냥법①

  • 입력 2018.08.03 10:24
  • 수정 2018.08.03 13:43
  • 기자명 이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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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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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만 둘을 낳았다. 시어머니 푸념이 처마 밑에 곶감 달리듯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남편은 자주 집을 비웠다. 더 이상 아이는 들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아침이었다. 물동이를 이고 마당으로 들어서니 발등 위로 보퉁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깜짝 놀라 눈을 들어보니 마루 위에서 시어머니가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아가거라. 썩 돌아가 내 눈앞에서 그 꼬락서니 보이지 말거라. 니가 내지른 그것들도 다 거두어 가고.

서릿발 같은 호령 끝에 두 딸아이가 치맛자락을 거머쥐며 칭얼거렸다. 암만 둘러봐도 남편이며 시아버지는 코끝도 보여주질 않았다. 뒤늦게야 어젯밤에도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늘 들어왔던 시어머니 푸념이라 생각하며 귓등으로 듣고 부엌으로 들어서는데 시누이들이 몰려와 어깻죽지를 거머쥐고 끌어내더니 삽작문을 닫아버렸다. 그때가 휴전 한해 뒤, 스물한 살이었다.

모내기가 막 끝난 때였다. 잠시 다니러왔다는 핑계로 어머니가 계시는 산 너머 마을 오라비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입 꾹 다물고 삯자리 위에 드러누워 사흘 곡기를 끊었더니 어머니와 오라비들 추궁이 이어졌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실직고하자 두 오라비가 천왕동이처럼 산 너머 마을로 갔다가 와서는 한숨부터 늘어놓았다.

마음이야 그 상놈의 집구석을 불질러버리고 싶었지만 우야겠노, 이제부터 니 살 길은 니가 찾아야지 우야겠노. 이미 한 여자가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고 있더라는 말은 벽 너머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로 알아차렸다. 오라비랍시고 범같이 달려가서는 그래 그 잘난 연놈을 그냥 두고 왔느냐고 뛰어가 두 얼굴에다 종주먹을 들이밀고 싶었지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마 뒤집어쓰고 물속에 뛰어들 작정으로 몇 번이나 저수지로 달려갔지만 자꾸만 어린 두 딸이 눈에 밟혔다.

두 눈 질끈 감고 살기로 작정하고 오라비 집에서 5년을 눌러앉았다. 그 사이 군식구 주제에 올케 면전에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못된 시누이가 되어 있었다. 늦었지만 니도 이젠 니 집에서 살아야 되겠구나. 두 집 건너에 사는 작은 오라비가 주선하고 문중사람들이 거들어주었다. 초막 같은 두 칸 집이 만들어지자 또 쫓겨난다는 설움에 눈물을 흘리며 이사가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 품팔이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침은 굶은 채 호미 들고 집을 나서며 두 딸에게 몇 번이나 일렀다. 점심때가 되기 전에 꼭 외갓집에 가 있으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해놓고는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 때 들밥을 먹고 남은 밥이며 반찬은 한 곳에 긁어모아 집으로 가져갔다. 염치없이 살기로 아예 작정을 해버렸다. 그것만이 두 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을 아낙네들이 땀봉댁이라고 불러주었다. 친정 마을을 두고 짓는 택호가 아니라 시집갔던 마을이 땀봉이라서 동네 여자들이 그렇게 택호를 지어준 것이었다. 참 괴상한 택호라고 생각했지만 괘념치 않기로 했다. 친정 마을이 아니라 시집살이했던 마을 이름으로 택호를 정한 여자는 아마도 땀봉댁이 유일했을 것이다.

땀봉댁. 악착같이 살았다. 남에게 줄 것은 아예 없었고 악착같이 받고만 싶었다. 1년 삼백예순날 내 집 솥에서 익혀낸 음식(일제강점기 작가 백신애 단편소설 ‘적빈赤貧’의 매촌댁 늙은이를 빼다 박았다)은 아예 먹을 줄 몰랐고 남의 집 솥에서 익힌 음식으로만 배를 채웠다. 일이 없는 날이면 아침부터 집집이 들며날며 마당 쓸어주고 소여물솥에 불 때주고 학교 가는 아이 치다꺼리 해주면서 허기를 껐다. 아무리 집성촌이라지만 앉을자리 설자리 가릴 줄 모른 채 마냥 눌러앉고 끼어드는 동네 밉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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