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소수 대 다수

  • 입력 2018.08.03 10:23
  • 수정 2018.08.03 15:14
  • 기자명 임영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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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환 변호사(법무법인 연두)
임영환 변호사(법무법인 연두)

100 대 1로 줄다리기를 하면 웬만해선 100명이 이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1명이 100명을, 소수가 다수를 이기거나 지배하는 경우가 매우 많이 발생한다. 인류의 역사도 소수의 지배자와 다수의 피지배자 사이의 투쟁의 연속이었고 제도적으로 다수의 지배가 가능한 민주주의도 최근 일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은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로운 경쟁과 이에 따른 공정한 거래이다. 하지만 현실 거래관계에서는 기술적·제도적 장벽 등으로 인하여 여전히 소수의 편익과 다수의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시장을 그대로 두면 소수에게 경제력이 집중되고 이로 인해 다수가 피해를 보는 불공정한 거래가 발생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을 두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소수가 경쟁하지 않고 편하게 담합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경우 과징금 부과 등 다양한 제재가 가능하다. 공정한 거래를 위해서는 다수 대 다수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소수 대 다수의 관계로 거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면 국가는 ‘보이는 손’을 통해 소수를 감시하고 제재해야 할 것이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6월 8일 가락시장 청과부류 4개 도매시장법인에 대하여 과징금 116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 도매시장법인이 농민들의 농산물을 위탁 받아 판매한 대가로 받는 위탁 수수료 등을 담합했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도매시장법인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매시장 개설자인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 공영도매시장 내에서 농산물 유통을 수행한다. 이 법에 따라 설립된 공영도매시장과 그 구성원인 도매시장법인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보호를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무나 도매시장법인을 운영할 수 없고 개설자의 허가를 받은 소수만이 가능하다.

가락시장의 경우 청과부류 도매시장법인은 그래서 소수인 6개 업체만이 허가를 받아 영업하고 있다. 이에 반해 도매시장법인과 거래하는 농민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수이다. 가락시장에서 일어나는 농산물 거래는 결국 소수와 다수의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더욱이 이러한 소수와 다수의 관계는 자본의 집중이라든지 기술 장벽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제도적 장벽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다수인 농민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된 법률에 따라 제도적으로 가락시장 내에서는 6개의 소수업체만 도매시장법인으로 농산물 거래를 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최근 3년간 가락시장 주요 도매시장법인 평균 18%정도의 영업이익을 얻었다. 참고로 2016년 도소매업 평균 영업이익율은 2.81%에 불과하다.

물론 도매시장법인의 높은 영업이익은 오로지 소수의 거래당사자로 지정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거래제도의 품안에서 도매시장법인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수익은 애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보자. 시장경제에서 공정한 거래가 일어나기 위한 기본적인 관계는 다수 대 다수의 거래관계이다. 가락시장의 소수 대 다수의 구조는 사후적 감독과 제재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인 다수 대 다수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현재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을 통해서도 6개의 도매시장법인에 그치지 않고 농민들이 출하한 농산물을 위탁받아 거래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가능하다. 사실 공정거래위원회의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들에 대한 과징금 부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제는 가락시장에서도 소수의 게으른 이익 추구를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게으른 이익 추구가 힘들어지는 다수 대 다수의 구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공영도매시장의 가치인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이 진정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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