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축사 피해 ‘비대위’ 출범

난립축사 인허가 과정 적법성 추적 … 행정의 관리·감독 등 전 과정이 문제

  • 입력 2018.07.22 08:21
  • 기자명 정경숙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정경숙 기자]

지난 4월 무분별한 축사 신축을 반대하며 집회를 이끌었던 강원도 철원군의 ‘동송읍이장협의회’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했다. 비대위는 2016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무분별하게 세워진 기업형 축사들이 과연 적법한 인허가 절차를 밟았는지 철저하게 파헤칠 계획이다.

축사가 집중적으로 들어선 철원 양지리와 오지리는 동송읍의 양 끝점에 있는 마을이다. 두 마을에 최근 2년 동안 5만4,693평의 논에 78건의 축사가 건축 허가 또는 신고를 받았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간 신고·허가 건수가 7,569평의 논에 10건인데 비해 무려 7배가 넘는다. 모두 세워진다면 현재까지 들어선 축사 규모의 2~3배가 들판을 채울 것이다.

주민들은 왜 두 마을에 집중적으로 축사 인허가를 내주었는지 의문을 던진다. 또 이현종 철원군수가 취임한 후 인허가 건수가 갑자기 늘었는지도 의문이다. 가장 크게 지적하는 문제는 인허가 과정이 과연 적법했는지다.

철원군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동송읍에 총 86건의 축사 인허가를 내주었다. 그 중 46건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3조 3호」 ‘높이 50㎝ 이내 또는 깊이 50㎝ 이내의 절토, 성토, 정지(포장 제외)등 토지형질 변경일 경우 개발행위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경미한 행위’에 해당된다 하여 인허가를 받았다. 29건은 아예 개발행위 협의 내역도 없이 인허가를 받았다. 이는 동법 제56조 시행령의 개발행위 허가 기준에 ‘조수류, 수목 등의 집단 서식지가 아니고, 우량농지 등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보전의 필요가 없을 것’이란 항목에 위배된다.

축사가 점령한 양지리 들판은 우량농지인 동시에 천연기념물인 두루미가 겨울을 나는 서식지다. 오지리는 우량농지다. 두 마을 모두 보존의 필요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곳이다. 게다가 축사들이 배출할 축분이 흘러들어갈 곳은 바로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으로 등재된 강물이다. 그럼에도 관은 건축 신고·허가만으로 인허가를 내준 것이다.

비대위는 건축신고를 내주는 과정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축산업자들이 건축 허가를 피하기 위해 건축법 시행령 제11조 3항을 교묘하게 악용했다는 것이다. ‘읍·면 지역에서 건축하는 400㎡ 이하의 축사 등은 건축 신고대상’이라는 조건에 맞추기 위해 ‘쪼개기 수법’을 동원했다는 지적이다.

비대위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 축산업자는 2,700평이 넘는 축사를 396㎡로 쪼개 각각 다른 명의로 건축 신고를 냈다. 이럴 경우 분뇨처리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되며 각 명의자 이름으로 보조금까지 지급받는다. 이 업자는 후에 축사 각 동의 벽을 터서 하나로 연결하는 수법을 썼다. 이런 꼼수를 공무원들이 과연 몰랐을까, 비대위는 분통을 터뜨린다. 몰랐다면 근무태만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대해 관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막을 도리가 없다고만 답한다. 비대위는 다른 지자체에서는 아예 축산업자들이 꼼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개발행위 허가를 철저히 받게 하는데, 철원군에서는 왜 못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축사 인근 마을은 물론, 동송읍 중심지 마을에서도 축사로 인한 악취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대두될 수질 오염이다. 철원군의 정화처리시설로는 기존 축분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터에 신규축사에서 쏟아져 나올 축분은 도대체 어디로 갈 것인지 주민들은 묻는다. 게다가 농지법 시행규칙 제4조의 2에 따르면 농지개량을 할 경우 성토의 조건이 ‘농작물의 경작 등에 부적합한 토석 또는 재활용골재 등을 사용하여 성토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데 목격자에 따르면, 폐아스콘으로 논을 매립한 축사가 있다. 폐아스콘에는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과 프롬알데히드 성분이 들어있다. 이것이 지하수나 수로를 타고 한탄강으로 흘러든다면 주민들은 독이 든 물을 마시는 거나 다름없다.

결국 축사 개발행위 인허가부터 건축 신고·허가, 이후 관리·감독 과정에 이르기까지 문제 아닌 것이 없다. 과정 중에 위법한 사실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대위는 말한다. 주민들의 행복과 건강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행정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지난 17일, 의정부 지방법원에서 동송읍으로 낭보가 날아들었다. 한 축산업자가 건축신고 신청을 반려한 동송읍을 상대로 취소 소송을 냈으나, 기각한다는 판결이다. 법적 근거는 양지리에 위치한 대상지가 우량농지여서 보전의 필요가 크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보여 왔던 관의 태도와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관이 법의 기준과 원칙대로 했다면 이리 쉽게 축사가 난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축사난립문제’는 지방선거 기간 동안 가장 뜨거운 의제였다. 재선된 이현종 철원군수는 취임하자마자 ‘가축사육에 관한 일부 개정조례안’을 입법예고했고, 엄격해진 규제 내용에 축산업자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사후약방문에 일관되지 못하며 주민 간 갈등만 조장하는 행정에 주민들은 혀를 차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