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밀 수매 끝낸 농민들 “작년 밀 값도 다 못 받아”

농식품부, 우리밀 정책 손 놨나
2016년산·2017년산 우리밀 아직 창고에
권장 품종 수시로 바뀌다 다시 ‘금강밀’만 수매키로

  • 입력 2018.07.20 10:28
  • 수정 2018.07.25 11:07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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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올해 수확한 우리밀을 엊그제 우리밀농협에 수매한 전북 익산시 오산면 농민들은 “농식품부가 밀 자급률 목표치를 발표했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자급률을 높이기는커녕 방치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우리밀 재배면적은 6,600ha, 생산량은 약 2만2,000톤으로 추정했다. 면적만 따지면 전년대비 30% 감소했고, 밀 자급률은 다시 1%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밀 자급률을 2022년 9.9%로 높이겠다고 발표했지만 되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우리밀 업계는 지난 2년 연속 재고물량 처리에 속을 끓여왔다. 2016년산과 2017년산 우리밀이 소비되지 않고 창고에 쌓여있다 보니 2018년산 우리밀 계약재배 물량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더 큰 문제는 우리밀이 팔리지 않아 수매대금 정산도 꽉 막혀있다는 점이다. 올해 우리밀 수매가 끝나기 전에 지난해 수매대금을 정산하겠다던 약속도 흐지부지 됐다.

전북 익산에서 우리밀 농사를 짓는 김상범씨와 김문기·이대인씨(왼쪽부터)가 2016년산 밀이 쌓여있는 창고 앞에서 수매대금 문제 등을 얘기하고 있다.
전북 익산에서 우리밀 농사를 짓는 김상범씨와 김문기·이대인씨(왼쪽부터)가 2016년산 밀이 쌓여있는 창고 앞에서 수매대금 문제 등을 얘기하고 있다.

 

전북 익산시 오산면에는 광주에 있는 우리밀농협의 익산지역사무소 개념의 건조·보관장이 있다. 이 지역 농민들이 광주까지 수매하기가 만만치 않아 별도의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이 곳으로 우리밀 수매를 하는 농가수만 80여 농가. 지난해 재고 고민으로 파종 때부터 생산량 쿼터제를 자율적으로 도입했지만, 수매량 기준 지난해 1,000여톤에서 올해 800여톤으로 20% 정도 줄었다.

우리밀농사를 짓는 이대인(38)씨는 “동계작물로 추위에 강한 우리밀 만한 것이 없다. 보리는 수확량도 훨씬 적다. 1,200평 한 필지에 밀은 40kg짜리 40~50개 나온다면 올해 겨울처럼 강추위에 보리는 20개도 안 나왔다. 그런데 재고물량 때문에 줄여 심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곳 창고엔 2017년산 우리밀은 수매량 그대로 남았고 2016년산도 창고에 쌓여있다”고 실태를 전했다. 특히 “수매대금 정산이 밀려 있어 큰일이다. 농가들 모두 50% 밖에 밀 값을 못 받았다”고 답답해했다. 인근에서 가장 밀농사를 많이 짓는 농민은 3,000만원이 미정산 상태다.

4만5,000평 규모로 밀농사를 짓는 김문기(40)씨는 “우리밀농사 많이 지은 농민들은 죽을 맛이다. 우리 동네서 가장 많이 밀 농사짓는 집은 올해 수매한 것까지 대금을 못 받으면 1억원 가량 밀리는 셈이다. 이자만 얼만가. 농협에 비싼 이자 내가면서 빌리기도 어려워 급한 돈을 지인들한테 빌렸다가 밀 대금 정산 약속이 기약 없이 미뤄져 곤란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털어놨다.

농식품부의 밀 정책이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권장하는 밀 품종에서도 드러난다.

20년차 우리밀농사를 짓고 있는 김상범(50)씨는 “정부에서 과거 금강밀을 심으라고 했다가 그루밀 품종을 장려했었다. 금강밀은 냉해는 물론 붉은곰팡이병 등 병해에도 약하다. 수량도 적어 농사짓기에 썩 좋은 품종이 아니다. 그 뒤에 백중밀, 수안밀 등으로 장려하는 품종이 1년이나 2~3년 만에 바뀌었다. 그런데 내년에는 가공업체에서 원한다고 금강밀만 받는다고 한다”면서 “농사짓기도 어려운 금강밀을 다시 심어야 할 형편이다”고 혀를 찼다.

이대인씨는 “정부가 밀 정책을 방치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 씨는 “현재 우리밀을 사용하는 업체들이 아주 영세하다. 정부가 밀 자급률을 높이겠다고 발표를 했으면 공공급식이나 대기업 등에 소비가 확대되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하는데 아무 대책이 없다. 우리밀농협이 농협중앙회 회원조합이 아니기 때문에, 재고량이 쌓일 때는 수매대금 문제를 자체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 농가소득 올리겠다거나 밀 자급률 올리겠다고 말로만 외칠게 아니라 밀 수매와 소비가 원활해지도록 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주 농식품부 식량산업과장은 “밀 자급률 향상을 위한 고민이 많은데 8월 중 생산측면과 소비확대 등 크게 4부분의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며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찾는 우수한 품질의 밀 생산을 하는 게 중요하다. 2016년산 밀의 주정용 방출이 절반만 이뤄진 것으로 안다. 재고 문제 역시 국산밀산업협회 등에서 자체적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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