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54] 농부와 에어컨

  • 입력 2018.07.21 21:28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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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장마가 그치자마자 온 나라에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곳 양양 해변가도 마찬가지다. 연일 30도를 넘어 35도를 육박하는 날도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밤중에도 소위 열대야가 지속되어 잠들기 어려운 날이 계속되고 있다.

덥다고 농사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지도 해야 하고 방제도 해야 하고 풀도 베어줘야 한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과수원에 매달려 일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더울 때는 새벽 5시경부터 아침 9시까지 주로 일한다. 그래도 온몸은 땀범벅이다.

요즘 알프스오토메는 진한 녹색이던 작은 열매가 점점 연한 연두색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잘 보이지 않던 열매가 요즈음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햇볕을 받으면 더욱 선명하게 그 작은 자태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가을 수확의 기쁨을 떠올리며 즐거워 할 새도 없이 금년도 농사는 지금부터라고 선배농부들은 충고한다. 병균충해 때문에 지금부터 9월말 수확기까지 두세달이 고비라는 것이다. 날씨가 습하다가 고온이 지속되면 세균, 바이러스, 벌레들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란다.

지난 2월 동계 전지전정을 시작으로 7월 중순까지 거의 4개월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오토메를 키워왔다. 지금까지 유기약제(석회보르도액, 자닮오일, 백두옹, 돼지감자 등) 방제를 6번 실시했고 4종 액비와 칼슘과 붕소 등 영양소 공급도 2회 실시했다. 예초작업은 1~2주에 한 번씩 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앞으로 두세달이 더 어려운 고비라고 하니 아름다운 과수원과 멀리 보이는 바다를 감상하다가도 정신이 번쩍 든다.

방제 하고 전지·전정 하고 예초만 해도 오토메가 무조건 잘 자라주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게 그렇지 않다. 매일같이 어디 이상은 없는지 병충해는 발생하지 않았는지 잎사귀는 정상인지 햇볕은 골고루 들어가고 있는지 노심초사 마음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만약 스마트한 기계들이 알아서 오토메를 키워준다면 어떻게 될까. 영양도 방제도 온도도 오토메가 좋아하는 것으로 맞추어 놓으면 지가 스스로 자라서 열매 맺는다면 어떻게 될까. 날이 더워 구슬땀을 흘릴 필요도 없고 에어컨 빵빵 돌아가는 사무실(제어실)에 앉아 손가락으로 오토메를 키운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수백 평, 수천 평의 밭에서 생산해야하는 과수의 경우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건 이미 농업이 아니요, 농사일도 아니다. 농사는 인간의 노동과 마음과 정성이 자연과 어우러져 인간의 먹을거리를 생산해 내는 고귀한 육체적 정신적 활동이다. 노동의 가치가 뭔지, 농사가 뭔지, 자연과 생태와 이 우주와 인간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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