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국회 속기사⑤ 본회의장에 인공위성이 날아다녔다

  • 입력 2018.07.15 23:1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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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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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속기록을 열람하다 보면 군데군데에 괄호를 치고 ‘장내 소란’이라 적어놓은 대목이 눈에 띈다. 정식으로 발언권을 얻어서 하는 의원의 발언이야 물론 속기록에 그 내용이 모두 담긴다. 그런데 의원들이 발언을 하거나 국무위원이 답변을 할 때, 회의장 여기저기서 마구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 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 없이 와글와글하면 속기록에 그냥 ‘장내 소란’이라고 쓰지요. 누군가 의석에서 하는 말을 분명히 알아들었을 때에는 가령 ‘발언 취소해, 라고 외치는 의원 있음’ 이렇게 적어요.”

왕년의 국회 속기사 김진기 씨의 증언이다.

민주적 의회정치의 운영, 혹은 건전한 토론문화의 전통이 일천했던 관계로(사실 요즘도 썩 달라진 점은 없지만), 국회의 회의장에서는 여야 간에 격한 다툼이 잦았는데, 그 여파가 속기사들의 수난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제헌 국회 때의 얘기다.

“뭣하고 있어!” “끌어내려!” “왜 방해해! 끝까지 들어봐!” “의장! 발언 제지해!”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그만 내려오지 못해!”

이런 소란상태가 한참 계속 되는가 했는데, 한 의원이 의석에서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명패를 단상을 향해 집어던졌다. 그런데, 날아간 명패가 단상 못 미처 속기석으로 떨어졌고, 속기사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히고 말았다.

“당시엔 국회의원의 명패가 세로로 길게 쓰여서 의석에 세워져 있었어요. 그걸 집어 던져서 속기사의 이마를 맞혔던 거지요. 한 손으로는 피가 줄줄 흐르는 이마를 짚고, 나머지 한 손으로 의원의 발언을 기록해야 했으니….”

그런 일이 있고나서는 의석의 명패를 가로로 써서 눕혔고, 얼마 뒤엔 아예 좌석에 고정시켰다. 그렇다고 집어 던질 물건이 없는 게 아니었다.

“집어치워!” “똑바로 하지 못해!” “그 따위 말이 어디 있어!” “야, 이런…”

아수라장 와중에 허공을 가로지르는 물건이 있다. 당시만 해도 회의장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기 때문에 좌석마다 유리 재떨이를 비치했는데 흥분한 의원들이 그걸 집어던졌고, 애꿎은 속기사들이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다음엔 유리 재떨이를 양은 재떨이로 바꿨다.

“그 뒤로는 흥분한 의원들이 바로 그 양은 재떨이를 마구 집어 던지는 거예요. 후후, 국회 본회의장에 인공위성이 마구 날아다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니까요. 참, 볼만 했어요.”

하지만 회의장에서 벌어진 모든 소란 중에서 가장 압권은 역시 김두한 의원의 오물 투척 사건이었다.

“국무위원 석에 정일권 총리하고 장기영 부총리가 있었는데, 발언대에 오른 김두한이 갑자기 갖고 들어온 깡통을 열더니 야, 이놈들아, 똥물이나 처먹어라 하고…”

그 바람에 속기사들도 오물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물을 뒤집어썼던 그런 정도의 수난이야 그저 에피소드로 추억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제헌 국회 이후 속기사로 복무해온 김진기 씨에게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정치적 격변기마다 터져 나왔던 이른바 날치기 파동이다.

1958년 12월 24일 국회 본회의장, 야당의 김선태 의원이 발언대에 올랐다.

“여러분! 지금 자유당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할지 모른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오늘도 밤을 새워서 의사당에서 농성을 이어갑시다! 기존의 국가보안법만 해도 간첩 잡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보안법 적용 대상을 넓히고, 이적행위의 개념을 확대한다? 이것은 곧, 부패한 정부를 비판 하는 우리 야당과 국민들의 입을 막으려는 술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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