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씨앗과 모종, 그리고 법

  • 입력 2018.07.15 09:16
  • 수정 2018.07.15 23:44
  • 기자명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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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달 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씨앗에 대한 권리를 농민에게’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미 종자회사에게로 넘어간 씨앗에 덧붙여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육묘에 관한 것까지 포함되어 상당히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의 주제는 씨앗과 모종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정부에서 유전자원이라고 부르는 씨앗과 그 모종은 누구의 것인가. 인간의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한 것이 작물재배가 가능하면서부터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그 정착생활 중에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조건에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면서 먹을거리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농업이 숱한 산업 중 하나의 산업처럼 취급되어진 것은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적어도 농사를 알게 된 후부터 더 좋은 씨를 받아 길러내고 퍼트려 온 것은 온전히 농민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 관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무리 종자회사가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낸다 한들 결국 그것을 뿌리고 거둬들이는 것은 여전히 농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얻은 씨앗 중에서 좋은 것만을 골라 이듬해 심던 관행이 어느 순간 통제된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원하는 씨앗을 얻을 확률이 자연조건에서보다 통제된 조건에서 더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통제된 조건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그 씨앗에 대한 권리를 독점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 물론 통제된 조건하에서 확률을 높인 것에 대한 수고까지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식물품종보호제도가 시작된 것은 교황이 새 씨앗을 만들어 낸 농민에 대한 수고로움을 포상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수고가 20년 동안 독점권을 줘야 할 만큼인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법을 만들어 씨앗과 그것을 싹틔워내는 모종에 대한 권리는 사업자만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먹을 것을 생산하기 위한 씨앗과 자신이 생산하기 위해 기른 모종에 대해서만 권리를 인정하고 그 나머지 권리는 농민들에게서 빼앗아 기업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리고는 선심 쓰는 듯이 농민들에게 일정한 권리를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러니 법으로 정해진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법에서 자가채종을 못하게 하고 자가채종이 가능한 씨앗을 예외로 정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하지 않은 것을 엉뚱하게 농민들이 자가채종 가능하게 하기 위해, 즉 농민들에게 그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한 것이다.

지난 2000년 6.15선언이 나오고 남북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를 금지해온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말했을 때, 정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사문화한 법인데 굳이 폐지할 필요가 있냐는 말들을 했다. 결국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했고 그 사문화되었다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었고 지금도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법에서 정한 것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언제 그 법이 우리를 옭아맬지 모른다는 말이다. 자가채종을 허용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예외로 정한 것만 인정하기로 했다면 백보 양보하여 그 예외 역시 법에 따라 정해야 한다. 법이 살아있는 한 ‘적용하지 않으니까 괜찮다’는 말은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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