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산다는 건

  • 입력 2018.07.08 09:21
  • 기자명 한영미(강원 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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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미(강원 횡성)
한영미(강원 횡성)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글쓰기 좋은 날이네요” 하는 권순창 기자의 칼럼원고 부탁문자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른 문자를 받았다. “말일에 결재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가능하시면 달걀대금을 일찍 입금해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언니네텃밭 달걀생산자님이 보낸 문자다. 농산물을 납품하고 대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건데 왜 죄송해야 하는가?

지난 주 달걀배달을 왔을 때 “야무지게 살았어야 했는데… 열심히 농사짓고 살았는데 빚만 잔뜩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부인 앞으로 대금을 입금시켜 주라며 내 이름 석 자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 될 거란 생각을 못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조용히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 주변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통장을 갖고 계신 농민 분들이 많다. “농산물결재대금을 가족통장으로 받았으면 좋겠다”거나 “현금으로 주면 안 되나?” 하고 물어 오는 분들도 계시다. 나도 농업회생자금을 받아 숨통을 트고 사는 입장이라 그 맘이 어떤 맘인지 알기에 괜히 속상하다.

한평생 농민운동을 하며 환경과 생명농업의 가치를 지키면서 살아왔고, GMO옥수수가 들어간 배합사료를 거부하고 대체할 수 있는 각종 농림부산물을 발효시켜 닭을 키워 유정란을 공급해주기에 이름 석 자만 듣고도 ‘건강한 달걀을 생산하시는 분! 바로 그 분이다’ 알아차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달걀을 받아들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귀한 달걀이 깨질까 염려하며 받아들 듯이 어려운 농촌의 현실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는 농부의 삶도 염려하며 받아 들어야하지 않을까? 농촌에서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사는 것’, ‘농민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을 위한 길을 다시 생각해본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농민과 농촌지역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농민권리선언을 하려고 한단다. 농민이 고령화되고 청년이 농사일을 이어받지 않아 앞으로 자연과 자원을 이어받은 농민이 희귀한 세상이 됐다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돼버렸기에 유엔에서도 인권차원에서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찾는가보다.

무슨 선언을 했다고 해서 금방 우리 삶이 달라지지 않겠지만 농민의 권리가 인권차원에서 다뤄진다는 것은 힘이 생기는 일이다.

이번 선거에 많은 후보들이 농가수당을 공약으로 내걸고 나와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도록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듯하다.

강원도지사도 65세 이상 소농들에게 월 20만원 농민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세웠다. 농민에게 자원을 관리하고 자연재해를 예방하며, 국민의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격려금인 것 같아,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어 기쁘게 받아들였다. 앞으로 이러한 소농 고령농민 수당이 아닌 농부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월 20만원 농가수당이 우리가 덜 준비돼 생긴 일이라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온 국민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농민기본소득을 삼시세끼 밥 먹듯이 이야기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전세계가 공히 인정하는 농민권리선언으로 가는 길, 농민기본소득으로 가는 길은 어쩌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맞닥뜨릴 세상이 될 것이기에 숨 고르고 나들이를 가자! 농민인권을 찾아가는 여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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